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ane wrote:


늘 누군가 데려다주고 안내해주는 제주만 다니다가 이번에는 함께 찾아가고 직접 마주하는 제주를 갑니다.
가이드북을 사서 꼼꼼히 읽어보고, 여행 루트를 짜다가 가만가만 생각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우리 땅, 낯선마을 제주를 여행하러가는데 여행루트로 짜놓은 곳의 절반이상은 '제주의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외국 건축가가 지은 교회, 박물관을 보려했던 것입니다.외국에서 살다온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이국적인 게스트하우스에 가보겠노라했고, 거대 자본가가 투자한 (결과적으로는 제주를 무너뜨리는) 명소에 가려했습니다.
이상하더군요.
제주를 보러 가겠다하면서, 가장 제주 답지 못한 곳을 가려하다니.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어 리셋.
다시 여행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무엇이 내게 남았으면 좋겠는지, 무엇을 알고싶은지, 지금의 삶에서 결핍된 것은 무엇인지.
여행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현실에서 거대자본에, 외국문화에 파묻혀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것은 얼굴도 모르고 언어도 다른 세기의 건축가가 지은 멋진 건물이 아니라
제주를 지켜온 영엄이 깃든 마을의 보호수와 신당인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물질을 나가는 해녀할망의 숨비소리를 듣고싶은 것입니다. 지나가던 바람도 쉬었다 가라고 구멍을 송송 내어 쌓아둔 제주의 돌담을 보고싶은 것입니다.
세월이 깎아놓은 주상절리대와 거문오름에서 흘러 내려 생겼다는 만장굴과 김녕굴을, 청보리 흐드러지게 핀 제주의 들판을 보고싶습니다.
고 김영갑 작가가 그렇게도 담아내고자 했던 용눈이오름에서의 바람을 마음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오백년, 육백년 그 자리를 지켜온 우리의 어버이, 비자나무를 조우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여행의 방향을 다잡고 다시 여행계획을 세워보는 중입니다.
주로 중산간마을과 해안에 자리한 오래된,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여행해볼까 합니다. 그곳을 걷고, 달려볼까합니다.
영실길 따라 한라산도 올라야지요.

우리 여행의 가이드북은 유홍준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으로 정했습니다.
20대 유년시절 선생님의 이 책들을 가이드북삼아 남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는 june의 의견입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알아가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이지요.

june에게도 제주가 낯선곳은 아닐테지만, 지난 제주여행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소중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혹은 새로운 제주의 길 위를 함께 달려도 좋겠습니다.

어디라도
우리 함께
그 길 위에서 손맞잡고 이야기 나누며. 마음 나누며.
바람과 햇살, 호흡을 나누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