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제주도 여행 떠나기 전에 이런 저런 책자들과 인터넷 자료들 보면서 마음이 들떠 있었다. 제주도 지도만 바라보고 있어도 흥분되고 내심 '여기 이 정도면 살기에 괜찮아 보이는데...' 하며 괜한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냥 생각뿐인 거였지만 그런 상상마저도 경계케 하는 책이 있다. '그렇겠지, 뭐 말처럼 다 좋겠어?'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 살짝 드는 건 사실이다. 잘 살펴 볼 일이다.

이 문구 마음에 든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또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책 첫머리에 인용된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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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섬에 살아봐서 아는데…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시대의창 펴냄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350호] 승인 2014.06.03  08:48:25
신생 도시 세종시에 이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 유입률을 기록하는 곳은? 바로 제주도다. 공기가 좋아서, 바다가 좋아서, 찌든 도시를 피해서 등의 이유로 많은 청·장·노년들이 기존 직장과 집을 포기하고 제주도 이민을 감행한다. 육지에 남은 이들에게 그들은 자신이 차마 가지 못한 길을 용단(勇斷)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저자 오동명씨(57)는 들뜬 마음으로 제주도행 편도 티켓을 끊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

오동명씨는 현재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 산다. 오씨는 5년 전 제주도로 건너갔다. 서귀포 깊숙이 자리를 잡고 산책도 하고 낚시도 하고 글도 썼다. 하지만 ‘3박4일 여행지’가 아닌 삶터로서의 제주도는 기대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습기와 바람은 질리도록 강했다. 호젓한 밤길은 들개들의 공격으로 위험했고, 멋있게 자란 삼나무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키는 꽃가루를 잔뜩 날렸다. 월세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제주도 토박이들은 이주민들에게 사실상 ‘입도세’를 요구했다.

자신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숱한 이주민들을 보면서 오씨는 그것이 결국 이주민들 스스로의 착각에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 ‘제주도다운’ 것에 대한 환상이 잘못됐던 것이다. 이주민들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제주도민들은 너무 배타적”이라고 불평했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오씨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오씨는 특히 ‘무작정’ 제주도로 건너오는 20~30대 청년들을 걱정했다. 이들이 향하는 일자리는 대개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은행에서 대출을 얻어 멋있게 차려놓은 카페가 수익이 나지 않아 실망하거나, 반대로 장사가 너무 잘돼 서울에서보다 더 바쁜 삶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이를 많이 보아왔다. 부지런히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생겼지만 임대료만 터무니없이 오르고 누구 하나 제대로 정착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오씨가 제주도행을 권하고 싶은 부류는 바로 ‘포기의 철학’을 지닌 이들이다. 기존 직업과 수입과 환경을 포기하고 건너왔으면서도 ‘포기’를 못해 허덕이는 사람들은 굳이 제주도에 올 필요가 없었다. 제주도에 온 애초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서울에서처럼 돈벌이에 매달리거나 서울 대치동을 옮겨놓은 듯한 제주도 시내 학원가에서 아이를 뺑뺑이 돌리고 있는 이들이다. 오씨는 “이전에 누리던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진정한 제주도의 멋을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누리던 걸 포기해야 제주가 즐겁다”

오씨야말로 과거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나선 표본이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재직하던 1999년, 오씨는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써 붙인 뒤 회사를 떠났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을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자사 논조를 비판하는 글이었다. 

큰 직장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사는 삶을 바꾼 김에 오씨는 ‘지리적으로도’ 자주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춘천, 홍천, 대전을 각각 1년씩 거쳐 제주도로 갔다. 원래 1년을 예상하고 갔던 제주도살이는 4년으로 늘었고,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는 그 말미에 쓴 책이다.

오씨의 현재 거주지는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의 토담집이다. 매일 저녁 달라지는 제주도의 총천연색 저녁노을이 때때로 그립지만, 동네 아이들의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함께 텃밭도 가꾸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또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책 첫머리에 인용된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