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ane wrote :

 

숨비소리 아련하게 들리던 제주의 북서쪽 구좌해변

 

제주는 사실, 제게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어머니 고향이 제주거든요. 제주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엄마는 중학생이 되면서 육지로 유학을 나오셨습니다. 대부분의 친척들은 육지로 옮겨 오셨지만, 엄마가 어린 시절을 제주에서 보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친근함이 묻어납니다.

 

아직 제주에 사시는 유일한 친척분은 엄마의 사촌 오빠. 제게는 5촌 당숙이십니다.

6.25 전쟁 때 부모님과 형제를 모두 여의시고 제주까지 피난을 내려와 터를 잡으셨다는 당숙님은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고, 스물이 채 되기 전에 제주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셨다고 합니다.

 

그 제주여인이 바로 지금의 숙모님이신데, 직업이 자그마치 ‘잠녀’입니다. 해녀를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숙모님은 물질을 하신지 40년이 넘으셨다며, 뭍에 있을 때보다 가끔은 물 안에 있을 때가 더 편하다고 웃으며 말씀하시더라구요.

벌이도 좋고 일도 재미있다며 딸이 원하기만 한다면 시키고 싶다고, 해녀 일에 대한 애정을 가득 보여주셨는데, 젊은 여자들 중에는 물질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 ‘우리가 마지막이다’라고 하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요즘은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것을 뒤이어서 육지에서 젊은 스쿠버들이 와서 물질을 한다고 해요.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니 잠수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물 속 것들을 쉽게 딴다고 말씀하시는 목소리에서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느껴지던걸요.

 

 

제주여행 둘쨋날, June과 저는 제주의 북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습니다.

그 곳 구좌읍은 하도리는 제주 해녀의 상징이 되는 곳입니다. 제주 전 지역에 해녀들이 물질을 하지만, 그 중 가장 많은 해녀들이 사는 곳은 바로 하도리입니다.

그리고 물질 뿐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해녀들의 항일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도 바로 이곳, 하도리입니다.

 

하도리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해녀들과 관련된 장소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그 말이 꼭 맞게, 차를 타고 달리며 채 5분을 달리지 못하고 차를 세워서 이곳 저곳에서 해녀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처음으로 발걸음을 한 곳은 갯것 할망당. 갯가의 신당이라는 뜻입니다.

소박하지만 신당답게, 돌담으로 둘러싸여진 자그마한 신당 안은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오색천과 소지가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이 신당에서는 어부와 해녀들의 만선과 무사귀환을 용왕님께 기원 드리는 곳입니다.

 

 

해녀들이 가진 유일한 안전장비는 바로 ‘테왁’이라는 부유도구인데, 이것을 몸에 묶어서 위치를 알리기도 하고 수면에서 잠깐 쉴 때 몸을 의지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이렇게 그렇다할 안전장비도 없이 가까운 해안가에서부터 저 멀리 바다 한 가운데 까지 나가기도 한다는 해녀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물길을 잘못 타거나, 파도에 휩쓸리는 경우는 아무리 오랜 세월 물질을 해온 해녀라 해도 자연 앞에서 힘없이 스러지고 맙니다.

목숨을 걸고 나온 삶의 터에서 망사리(체취한 해산물을 넣는 그물주머니) 가득 전복을 담아 가족이 있는 뭍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해녀들은 이곳 갯것 할망당에서 빌었을 텝니다.

 

 

해녀는 기량의 숙달 정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물질을 하는 해녀를 ‘애기해녀’라고 부른답니다.

해녀 그룹의 리더는 대상군 이라고 하는데, 이 대상군은 단순히 물질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덕성과 지혜, 포용력을 보고 해녀들이 스스로 정한다고 합니다. 능력만큼이나 리더십이 중요한 것이지요.

또 날씨를 볼 줄 알아야하는데, 거의 7일간의 날씨를 정확히 예측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해녀들의 일거수 일투족, 특히 건강 상태가 어떤지를 잘 살펴 오늘 물에 들어가도 되는지, 혹은 물질을 하다가도 상태를 살펴 철수시키기도 한답니다.

또 대상군의 능력은 시체를 찾을 때 발휘된다고 하는데, 죽은 시체가 조류에 실려오면 시체 부근 바닷물의 색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 시체를 찾고, 바람의 속도와 조류를 계산해서 시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내기도 한답니다.

 

문화유산 답사기 일부에 대상군을 뽑는 과정이 대화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대상군은 64세쯤 되어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사퇴의사를 표합니다. 그러면 모두들

“성님, 무슨 말을 햄수까?”

라며 일단 말립니다. … 대략 후보가 두세명으로 압축되는데 어떤 당찬 사람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가 모두

“성님은 아니우다게”

라고 비토를 놓으면 … 상군들이 의견을 모아

“순덕이 어멍이 맡아주십서”

라고 제청하면 모두 “그럽시다” 라고 동의해야 비로서 새 대상군이 탄생하게 된답니다.

 

일단은 사투리가 재미있고, 당찬 사람이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는 것, 물러날 때를 알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 ‘성님은 아니우다게’ 하고 비토를 놓는 해녀들의 모습에서 제주여인의 그 당찬 기질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갯것 할망당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르다 보니 불터(불턱)에 가려고 차를 세웠는데

저기 멀리에 색색깔의 고무 슬리퍼들이 널부러저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십여 켤레는 되어 보이는 슬리퍼들만 한 방향으로 널려있고 사람이 없어서 무슨 일인가 하고 시선을 돌려 바닷가를 보니, 해녀들이 여기저기 흩여져서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숨비소리’라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찻길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고 작은 해안마을이어서 조용한 가운데에 구지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파돗소리 사이사이에 ‘휘이이이~’하고 길고 높게 터져 나오는 해녀들의 깊고 애잔한 숨비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모습입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그 삶 그대로의 모습.

뜻밖의 만남에 행복한 우리는 입을 이렇게 모아서 ‘휘이이~’ 그 소리를 따라해 보며 씽긋 웃어봅니다.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 도착한 곳은 불터.

불터는 제주의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불터는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전후로 바람을 막고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쬐는 곳입니다.

몽돌을 둥글게 겹으로 쌓아서 가운데에는 불을 피우는 곳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바람을 등진 가장 좋은 자리는 대상군의 자리이고, 불을 피워 연기가 나는 쪽은 하군의 자리.

불터은 단순히 추위를 피하는 곳을 넘어서 해녀들의 사랑방 역할을

 

 

제주 가장자리를 빙 둘러 자리한 불터를 보면서, 제주를 지키는 것은 제주를 둘러싸고 있는 제주의 여인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스치듯 해 보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항일운동에 앞장섰다는 제주의 여인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하도리 바닷가에서 들은 나이 지긋한 잠녀의 숨비소리가 아련하게 울려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