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ane wrote :

 

 

 

 

들리는 이름에 이미 아련하고 그리운 느낌이 깃들어 있는 곳. 사려니 숲에 다녀왔습니다.

제주가 품고 있는 무수한 것들 중 우리 두 사람이 유독 좋아했던 곳이 바로 제주의 숲, 원시림 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 일정 중간중간 비자림, 동백숲, 그리고 사려니숲에 들렀습니다.

 

사려니 숲 하면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사려니숲 길 양쪽 도로를 따라 나있는 키 큰 삼나무 인데, 심지어 이국적이기 까지 한 청량감과 신비감을 주는 이 삼나무 길은 사실, 1960년대에 인공적으로 재조림되었다 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수 천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원시림을 가로질러 길을 닦아내고, 이 삼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사려니숲길이 삼나무로 인공 재조림된 반면, 숲의 안은 때중나무, 산딸나무, 편백나무 같은 3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식생이 노루, 족제비 같은 동물들과 새, 파충류들과 함께 자라나고 있습니다.

키 큰 나무 아래로는 낯선 풀들이 무성했는데. 코브라처럼 생겨 잎을 안으로 말아 넣은 보랏빛 꽃이 특이해서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았는데, 안내문을 보니 그것은 독성이 강한 큰천남성 이라는 식물이더라구요.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아이들이 많은데, 제주의 숲에는 나무나 풀을 설명해 놓은 안내 푯말이 잘 되어 있습니다. 육지에서 자생하는 것과는 다른 식물들이 많아서 이기도 할 테고, 제주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소중히 여기고,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겠지요.

특히 비자림에 있는 식물 푯말들은 그 말들이 하나하나 재미있고 우습기까지 했습니다. 나무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야깃거리를 써 놓기도 했고, 마치 방문객을 놀리듯 우스꽝스럽게 적어놓은 글들을 보며 숲을 산책하는 것은 또 하나의 묘미였습니다.

 

비자림

 

 

 

사려니숲은 제주시 구좌읍과 조천읍에서 서귀포 남원읍까지 이어지는 15km의 긴 숲길을 품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라고 경계 짓기 어려우리만큼 이 숲은 크고, 깊습니다.

여섯 개의 오름을 가까이에 두고 있고, 사려니 오름을 품고 있습니다.

사려니 오름 정상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서귀포 문섬과 범섬, 산방산, 그리고 사려니숲을 둘러싸고 있는 오름 동산들이 한눈에 보인다고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오름 정상까지 다녀가지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의 찾은 사려니숲은 그 기운을 곱절로 우리에게 뿜어냈습니다.

아직 새벽 기운이 가시지 않아 공기 중에는 상쾌한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땅에서는 찹찹한 기운을 올라왔습니다.

그 차가운 땅의 기운이 불쾌하거나 낯설지 않았고

나무사이를 감아 돌아 불어오는 바람은 깊이 들이쉬는 숨을 따라 몸속으로 그대로 스며들었으며

새소리며 바람소리, 노루의 울음소리 같이 들려오는 소리는 귀를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타닥타닥 발걸음 따라 나뭇가지가 부서지는 소리며, 사각사각 붉은 화산송이석이 발 밑에서 자그러지는 소리는 제주를 떠나온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지금도 마음속에 아련합니다.

 

6월 중순 즈음의 사려니숲은 마지막 꽃잎을 우리에게 나려주었습니다.

은은하고 달큰한 꽃의 내음이 꽃잎을 타고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는데, 그 하아얀 꽃잎을 내려주던 나무 이름이 무었이었던가요.

 

제주 숲이 육지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유달리 울창하고 푸르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나무들이, 꽃들이 짖는 표정이 다르다는 느낌마저 받곤 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가만가만 살펴보다가 느낀 것은

쓰러져 있는 나무들 이었습니다.

왜, 육지에 있는 숲이나 공원에서는 수명이 다 되어 쓰러지거나 어떤 이유 때문에 부러진 나무둥치는 치워버리곤 하잖아요. 외관상으로 좋지 않다는 이유이거나 혹은 그 나무를 가져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곤 하지요. 그런데 이 곳 제주의 숲에서는 스러진 모든 나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제 자리에 있더라구요.

 

그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수명이 다 했다고,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자리에, 사람의 한 세월 보다도 어쩌면 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켰을 그 나무를 제주의 숲은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와 박물관에 있는 '깨진 도자기'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수 천 년 전 유물인 도자기가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지금의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거나 혹은 유물로서의 가치를 낮게 비추지만

사실, 어쩌면 그 도자기는 깨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낯선 나라의 문화 가운데는 도자기를 땅에 깨트려 악귀를 물리친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어쩌면 그 도자기의 완성이랄까, 도자기의 사명은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지는 것. 이 아니었을까요.

그때 나눈 이야기가 사려니 숲을 걸으며 슬몃 생각이 들었습니다.

좁고 짧은 생각으로는 꼿꼿이 서 있는 것이 '완성' 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려니 숲에 이리저리 누워있는 나무들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더라구요.

 

 

사려니 숲에 비하자면 사실, 비자림은 조금 싱거웠어요. 잘 정리가 되어있는 정갈한 숲이었거든요.

천 년이 넘게 살아온 비자나무를 중심으로 그 곳도 제주의 원시 숲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지만

길에는 나뭇가지 하나 없이 흙모래가 가지런히 깔려있는 모습이 왠지 조금 새침해 보였습니다.

 

새천년 비자나무

 

하지만 저는 비자림에 있는 800년 넘게 살아온 큰 비자나무를 ‘아버지나무’라고 이름 붙여 부르곤 합니다.

울타리 처져 보존되고 있는 천년 비자나무 말고, 그 비자나무를 지나 깊은 숲속으로 없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크은 나무둥치를 가진 비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것이 자아내는 느낌이 마치 ‘아버지’ 같아서 지난 제주여행 때 저는 그에게 ‘아버지나무’라고 이름 붙여 주었습니다.

 

숲 속에서 많은 이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숲이 우리를 어버이처럼 품어주기 때문일까요.

제주의 숲은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어버이가 되고,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