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ane wrote :

 

 

 

 

들리는 이름에 이미 아련하고 그리운 느낌이 깃들어 있는 곳. 사려니 숲에 다녀왔습니다.

제주가 품고 있는 무수한 것들 중 우리 두 사람이 유독 좋아했던 곳이 바로 제주의 숲, 원시림 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 일정 중간중간 비자림, 동백숲, 그리고 사려니숲에 들렀습니다.

 

사려니 숲 하면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사려니숲 길 양쪽 도로를 따라 나있는 키 큰 삼나무 인데, 심지어 이국적이기 까지 한 청량감과 신비감을 주는 이 삼나무 길은 사실, 1960년대에 인공적으로 재조림되었다 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수 천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원시림을 가로질러 길을 닦아내고, 이 삼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사려니숲길이 삼나무로 인공 재조림된 반면, 숲의 안은 때중나무, 산딸나무, 편백나무 같은 3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식생이 노루, 족제비 같은 동물들과 새, 파충류들과 함께 자라나고 있습니다.

키 큰 나무 아래로는 낯선 풀들이 무성했는데. 코브라처럼 생겨 잎을 안으로 말아 넣은 보랏빛 꽃이 특이해서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아보았는데, 안내문을 보니 그것은 독성이 강한 큰천남성 이라는 식물이더라구요.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아이들이 많은데, 제주의 숲에는 나무나 풀을 설명해 놓은 안내 푯말이 잘 되어 있습니다. 육지에서 자생하는 것과는 다른 식물들이 많아서 이기도 할 테고, 제주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소중히 여기고,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겠지요.

특히 비자림에 있는 식물 푯말들은 그 말들이 하나하나 재미있고 우습기까지 했습니다. 나무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야깃거리를 써 놓기도 했고, 마치 방문객을 놀리듯 우스꽝스럽게 적어놓은 글들을 보며 숲을 산책하는 것은 또 하나의 묘미였습니다.

 

비자림

 

 

 

사려니숲은 제주시 구좌읍과 조천읍에서 서귀포 남원읍까지 이어지는 15km의 긴 숲길을 품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라고 경계 짓기 어려우리만큼 이 숲은 크고, 깊습니다.

여섯 개의 오름을 가까이에 두고 있고, 사려니 오름을 품고 있습니다.

사려니 오름 정상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서귀포 문섬과 범섬, 산방산, 그리고 사려니숲을 둘러싸고 있는 오름 동산들이 한눈에 보인다고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오름 정상까지 다녀가지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의 찾은 사려니숲은 그 기운을 곱절로 우리에게 뿜어냈습니다.

아직 새벽 기운이 가시지 않아 공기 중에는 상쾌한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땅에서는 찹찹한 기운을 올라왔습니다.

그 차가운 땅의 기운이 불쾌하거나 낯설지 않았고

나무사이를 감아 돌아 불어오는 바람은 깊이 들이쉬는 숨을 따라 몸속으로 그대로 스며들었으며

새소리며 바람소리, 노루의 울음소리 같이 들려오는 소리는 귀를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타닥타닥 발걸음 따라 나뭇가지가 부서지는 소리며, 사각사각 붉은 화산송이석이 발 밑에서 자그러지는 소리는 제주를 떠나온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지금도 마음속에 아련합니다.

 

6월 중순 즈음의 사려니숲은 마지막 꽃잎을 우리에게 나려주었습니다.

은은하고 달큰한 꽃의 내음이 꽃잎을 타고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는데, 그 하아얀 꽃잎을 내려주던 나무 이름이 무었이었던가요.

 

제주 숲이 육지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유달리 울창하고 푸르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나무들이, 꽃들이 짖는 표정이 다르다는 느낌마저 받곤 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가만가만 살펴보다가 느낀 것은

쓰러져 있는 나무들 이었습니다.

왜, 육지에 있는 숲이나 공원에서는 수명이 다 되어 쓰러지거나 어떤 이유 때문에 부러진 나무둥치는 치워버리곤 하잖아요. 외관상으로 좋지 않다는 이유이거나 혹은 그 나무를 가져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곤 하지요. 그런데 이 곳 제주의 숲에서는 스러진 모든 나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제 자리에 있더라구요.

 

그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수명이 다 했다고,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자리에, 사람의 한 세월 보다도 어쩌면 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켰을 그 나무를 제주의 숲은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와 박물관에 있는 '깨진 도자기'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수 천 년 전 유물인 도자기가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지금의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거나 혹은 유물로서의 가치를 낮게 비추지만

사실, 어쩌면 그 도자기는 깨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낯선 나라의 문화 가운데는 도자기를 땅에 깨트려 악귀를 물리친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어쩌면 그 도자기의 완성이랄까, 도자기의 사명은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지는 것. 이 아니었을까요.

그때 나눈 이야기가 사려니 숲을 걸으며 슬몃 생각이 들었습니다.

좁고 짧은 생각으로는 꼿꼿이 서 있는 것이 '완성' 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려니 숲에 이리저리 누워있는 나무들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더라구요.

 

 

사려니 숲에 비하자면 사실, 비자림은 조금 싱거웠어요. 잘 정리가 되어있는 정갈한 숲이었거든요.

천 년이 넘게 살아온 비자나무를 중심으로 그 곳도 제주의 원시 숲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지만

길에는 나뭇가지 하나 없이 흙모래가 가지런히 깔려있는 모습이 왠지 조금 새침해 보였습니다.

 

새천년 비자나무

 

하지만 저는 비자림에 있는 800년 넘게 살아온 큰 비자나무를 ‘아버지나무’라고 이름 붙여 부르곤 합니다.

울타리 처져 보존되고 있는 천년 비자나무 말고, 그 비자나무를 지나 깊은 숲속으로 없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크은 나무둥치를 가진 비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것이 자아내는 느낌이 마치 ‘아버지’ 같아서 지난 제주여행 때 저는 그에게 ‘아버지나무’라고 이름 붙여 주었습니다.

 

숲 속에서 많은 이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숲이 우리를 어버이처럼 품어주기 때문일까요.

제주의 숲은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어버이가 되고,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June wrote:-


Jane이 제주 4·3 사건 관련 유적지를 따로 묶어 올려 놓았다. 마음이 하나로 일어 읽기에는 자연스럽고 편했지만 그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 덜 아문 상처를 스치듯 쓰라림이 올라온다.



 

사진은 제주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 내 강요배 작가의 그림 <젖먹이> 위에 쓴 시



동백동산

동백 활짝 핀 잘 가꿔 진 정원 정도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이거 왠걸? 

 


철 지나 동백은 없고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땅에선 스산한 냉기와 습기 뿜어 올라와 고목들 타고 흐르는 귀기 가득한 곳. 이러니 이 곳으로 제주민들이 숨어 들어올 수 있었겠구나 싶다. 하지만 이 곳 조차 안전하지 않아 여기서도 처참히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니... 제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가슴 아픈 곳이다. 참 아는만큼 보이는구나 싶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조금 전만 해도 굳은 얼굴에 말도 없이 손 꼭 잡고 자꾸만 빨라지는 걸음에 뒤도 안 돌아보고 헤쳐 나왔던 동백동산. 다시 간다면 좀 맘 편히 갈 수 있으려나? 끄트머리에는 유명한 습지가 있다는데 거기까진 못 가봤다. 담에 꼭 담담히 거기까지 걸어가보리라. 



백조일손지묘

와, 여긴 또 뭐냐? 이 132위의 내력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 참 나.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고 가슴 아픈 역사가 아로새겨진 현장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일어난 사태이긴 하지만 1948년 4·3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부디 극락왕생하셨기를...



제주에 억울한 죽음들이 너무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이 옛날 일이기만 하고 옛 일을 거울삼아 더 이상은 이런 비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는 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11구의 시신을 품은 채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가 있다. 억울하다. 


[June] 산천단

여행/제주 2014. 6. 25. 11:33

June wrote:-


흠~ 휴~


제주 산천단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 숨 돌린다. 등줄기엔 땀이 삐직삐직...

"등에 땀 났어요."

제인이 한 말씀하시는데 머쓱하다. 말은 안 해도 긴장한 게 느껴졌으리라.


운전 안 한지가 너무 오래 되었고 인도에서 10년 지내다 온 게 한국에서 남의 차 빌려 오랜만에 운전하는 것에 대해 걱정과 부담으로 작용했다. 인도는 한국과 달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주행방향도 반대이다. 어느덧 익숙해져버려서... 더구나 마지막 해에는 작은 스쿠터 사고까지 난 뒤였으니 뭐랄까, 트라우마 비스무리한 게 생기긴 생긴 모양이다. 한마디로 쫄았지, 뭐. 제주 여행 첫 장소인 산천단에 도착해서 즐거움과 설렘보다는 안도감이 우선이다. 



산천단


고래로부터 고을 수령들께서 한라산을 향해 천신과 산신들께 제사 올리는 곳이다. 해서 제주 왔다고 그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이번 제주 여행의 무사안녕을 빌고자 첫 장소로 선택했다. 발원문을 근사하게 한 자락 해볼 요량이었으나 운전하느라 긴장했던 탓인지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고, 옆에 제인 있어 좀 쑥스럽고, 근사한 말들은 생각도 안 나고... 어물어물...   


곰솔 여덟그루가 멋드러지다. 여덟그루인지 꼭 세어본다. 


여행 내내 내가 사진을 다 찍다시피했는데 여기만큼은 긴장한 탓에 내가 찍은 사진이 없는데 다행이 제인이 몇 장 찍었나보다. 하지만 사진 없이 넘어가기 섭섭하니 제주 바다 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하련다.



어딘가 하면... 제주 북동해안에 있는 어... 월정리! 해수욕장. 너븐숭이 가는 길이었던가?


덧붙이면,

제주 여행/답사에 자동차(렌트카)는 거의 필수이다. 여기저기 제대로 돌아보고자 한다면. 다른 이동수단들도 나름 맛은 있겠지만... 나는 그러니까 15년도 더 전인 어느 해 여름, 이틀 만에 자전거로 제주 일주한 적 있는데 그건 완전 극기훈련, 철인 3종 경기 수준이었음. 렌트카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싸서 놀랐다. 하루에 12,500원 (시기마다, 보험추가에 따라, 업체별로 천차만별) 차도 좋고. 가장 저렴한 경차 예약했는데 같은 가격에 한 단계 높은 2014년 신형 경차 나와서 기분 좋았다는...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한라산 올라갈 때 완전 죽을라고 함. 밟아도 밟아도 대답없는...


jane wrote:


지난 유월 열 하룻날 부터해서 다섯 밤을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가끔 흐릿한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답사와 여행의 중간 즈음 어딘가에 우리는 마음을 두고, 걷고 또 달리며 한라의 품 안에 있었습니다.


6월 11일, 첫째날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산천단-세미마을본향당-회천오석상-와흘본향당-연북정-조천연대-너븐숭이

이름만으로도 낯선 곳들. 세미마을 이라던지, 너븐숭이 같은 곳의 지명은 이름의 한 글자 사이사이에 제주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제주’ 라고 검색창에 써 넣으면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은 연관검색어들.


우리 두 사람의 제주 여행에 한 분의 안내자가 계셨는데, 바로 유홍준 교수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라는 책을 통해서 여섯 날 동안 우리에게 제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시듯 자세히 알려주셔서 어떤 때에는 네비게이션이나 가이드북 보다도 더 자세하게 답사 장소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제주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산천단.

이곳은 한라산의 산신께 제사를 드리던 곳입니다.

제주인들은 탐라국 시절부터해서 해마다 한라산 백록담 높은 곳까지 올라 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겨울에는 추위 속에서 제사 지낼 짐들을 들고 오르내리며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조선 성종에 부임한 제주목사 이약동 선생이 산신제 지내는 장소를 백록담에서 산 아래 마을 이곳 산천단으로 옮겼다 합니다.


산천단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르른 곰솔나무입니다.


600년 이라는 오랜 세월 여덟 그루의 곰솔이 이 곳 산천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지의 소나무들과 조금 다르게 나무 껍질 색깔이 어둡고, 잔가지 없이 꼿꼿하게 하늘로 높이 솟아 있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 있는 곰솔나무들 사이사이로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기도 합니다. 바람이 시원하고, 도로가 가까워 찻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곰솔나무 사이사이를 비켜지나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허리 숙여 세 번 절을 올려 우리 두 사람은 제주입성을 고했습니다.

나란한 그와 나의 거리가 딱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산천단. 그 옛날 제주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제단 앞에 서서 제주의 무수한 신들께 인사했습니다.

다부지게 자리를 지키고 선 산천단의 여덟 그루 곰솔나무들은 마치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 마냥 느껴집니다.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라고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한 마디가 튀어나옵니다. 키 크으신 곰솔나무가 "오냐. 자알 왔다~" 하고 허헛 웃음을 내 보이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프지 않고, 사고 나지 않고(여행 내내 그가 운전을 해서 다녔기 때문에)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치기를 은근하게 부탁드려 봅니다.


마음 한 켠에 기쁨과 편안함이 동시에 샘솟으면서 제주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에 오느라 바쁘고 서둘렀던 마음이 한 숨 돌려지며 차분해지고 한가로워졌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제주에 온 것입니다.

jane wrote:


늘 누군가 데려다주고 안내해주는 제주만 다니다가 이번에는 함께 찾아가고 직접 마주하는 제주를 갑니다.
가이드북을 사서 꼼꼼히 읽어보고, 여행 루트를 짜다가 가만가만 생각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우리 땅, 낯선마을 제주를 여행하러가는데 여행루트로 짜놓은 곳의 절반이상은 '제주의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외국 건축가가 지은 교회, 박물관을 보려했던 것입니다.외국에서 살다온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이국적인 게스트하우스에 가보겠노라했고, 거대 자본가가 투자한 (결과적으로는 제주를 무너뜨리는) 명소에 가려했습니다.
이상하더군요.
제주를 보러 가겠다하면서, 가장 제주 답지 못한 곳을 가려하다니.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어 리셋.
다시 여행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무엇이 내게 남았으면 좋겠는지, 무엇을 알고싶은지, 지금의 삶에서 결핍된 것은 무엇인지.
여행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현실에서 거대자본에, 외국문화에 파묻혀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것은 얼굴도 모르고 언어도 다른 세기의 건축가가 지은 멋진 건물이 아니라
제주를 지켜온 영엄이 깃든 마을의 보호수와 신당인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물질을 나가는 해녀할망의 숨비소리를 듣고싶은 것입니다. 지나가던 바람도 쉬었다 가라고 구멍을 송송 내어 쌓아둔 제주의 돌담을 보고싶은 것입니다.
세월이 깎아놓은 주상절리대와 거문오름에서 흘러 내려 생겼다는 만장굴과 김녕굴을, 청보리 흐드러지게 핀 제주의 들판을 보고싶습니다.
고 김영갑 작가가 그렇게도 담아내고자 했던 용눈이오름에서의 바람을 마음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오백년, 육백년 그 자리를 지켜온 우리의 어버이, 비자나무를 조우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여행의 방향을 다잡고 다시 여행계획을 세워보는 중입니다.
주로 중산간마을과 해안에 자리한 오래된,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여행해볼까 합니다. 그곳을 걷고, 달려볼까합니다.
영실길 따라 한라산도 올라야지요.

우리 여행의 가이드북은 유홍준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으로 정했습니다.
20대 유년시절 선생님의 이 책들을 가이드북삼아 남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는 june의 의견입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알아가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이지요.

june에게도 제주가 낯선곳은 아닐테지만, 지난 제주여행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소중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혹은 새로운 제주의 길 위를 함께 달려도 좋겠습니다.

어디라도
우리 함께
그 길 위에서 손맞잡고 이야기 나누며. 마음 나누며.
바람과 햇살, 호흡을 나누며.


jane wrote :


녹음이 짙어져가는 여름의 초입.
우리는 제주로 갑니다.

여고시절에 제주로 수학여행 갔던 것까지 합을 하면 네 번째 제주행 입니다.

수학여행으로 갔던 제주가 그 중 최악이었는데, 3일의 여정 중 절반 이상을 버스를 타고 폭풍우 속을 뚫고 제주도로를 달린 것과 거뭇 거뭇한 현무암으로 된 돌담이 나란한 민속마을 구석까지 안내 받아서 간 곳이 고작 설탕 섞인 꿀을 순진한 여고생들에게 비싼 값에 팔던 선물의 집이었던 것은 그 중 가장 지우고 싶은 제주의 기억입니다.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에 숙소는 제주 언덕 위에 자리한 수녀원이었습니다. 어디였던가 지명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깊은 밤 휘몰아치던 바람을 그대로 받아내던 수녀원과 그 곳의 수녀님들은 어렴풋이 남아있습니다.
그 수녀원 방 구석에서 친구들과 처음으로 술을 마신 기억도 납니다.
소주를 병째 들고올 수 없었기 때문에 사이다 병, 오렌지주스병, 이온음료병에 소주를 가득 담아 옷 속에 고이고이 모셔 제주바다를 건너 왔습니다. 그 소주들에서는 달큰한 사이다 냄새가, 새큼한 오렌지냄새가 났었지만, 태어나 처음 마신 소주의 맛은 그것을 담아온 병의 원래 음료처럼 달거나 새큼하지 않더군요. 맛도 없는 소주를 우리는 오기로, 재미로, 호기심으로 마셔댔고
결국 그득하니 취한 우리를, 우리만한 딸자식이 있던 담임선생님이 챙겨 잠자리에 뉘여주셨습니다.
빈속에 마시고 자면 다음날 속쓰리다고 새우깡을 사다주셨던가요. 뜨거운 물을 떠다 주셨던것도 같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발걸음 한 제주는 첫번째 제주행과는 많이 다릅니다.
일단 7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그 7년의 세월 사이에 나는 한번도 내 삶에서 제주를 떠올려 본적이 없었고 제주를 떠올리지 않은 만큼이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듯도 합니다.

두번째 제주는 지난 봄.
내가 간것이 아니고 제주가 나를 부른 것입니다.
제주의 큰 신이라는 한라의 설문대할망이, 제주에 산다는 수백의 신들이, 중산간 원시림 속에서 오백년을 살아온 비자나무가 나를 부른듯 했습니다.
어서 와서 쉬었다 가라고 말이예요.
아프고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쏙 빠져 제대로 말을 할 힘도 없었지만, 제주로 갔습니다. 가방에는 한가득 먹어야할 약들과 음식들이 있었고 짐이라고 할 것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아픈 저를 제주공항까지 마중나온건 제주에 사는 지인 선생님과 그 집 강아지 '장군이'.
강아지 중에도 몸집이 작은편에 속하는 마르티즈 종인데, 이름은 장군이 입니다. 이름처럼 장군감입니다. 왠만해서는 잘 짖지 않고 우직하고 때를 쓰거나 징징거리는 법 없이 잘 기다릴 줄 알고 눈치가 빠른데다가, 용눈이 오름을 오를 때는 저보다 몸집이 서른배는 족히 큰, 달려오는 황소때 앞에서도 피하지 않고 뒷다리에 힘을 가득실어 땅을 단단히 지지하고서는 사납게 짖던 녀석입니다.
그 녀석과 선생님 내외분의 보살핌을 받으며 5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대신 중산간 마을, 4.3유적지, 원시림 사이를 걸었습니다. 힘이 들어 하루에 겨우 한 곳 정도 둘러보고 걷고,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밥을 지어 먹고 이야기 나누다 잠드는. 그런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제주에 5일이나 머물렀지만 둘러본 곳은 다섯곳이 채 되지 않습니다. 전날 갔던 곳이 너무 좋아 다음 날 다시가곤 했고, 사려니 숲 한가운데에 그냥 가만히, 한참을 앉아있다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제주 할망의 기운을 듬뿍 받아 건강해져서 돌아가길, 치료법이 없다는 이 병이 낫기를, 은근한 기적을 바랬지만 나는 돌아가는 날 많이 지친 채로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가방 속은 다 먹은 약의 빈자리로 가벼웠지만 몸은 무거웠고 비행은 버거웠습니다.

쉬엄쉬엄 다니는 법을 더 익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몸에 맞추는 수 밖에요. 자꾸만 욕심이 나고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자분자분 합니다' 하는 말을 마음에 새기며 1년을 연습했습니다. 또 다시 지난시간들 처럼 몸을 돌보지 않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번째 제주는 가을즈음이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르다 못해 깊어만가고, 제주의 선생님 내외분이 입으시는 제주의 햇살 머금은 갈옷은 그 때의 날씨와 참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그런 가을날, 제주가 나를 다시 불러 발걸음 했지요.
봄 보다 조금 더 건강해져서 다시 제주로 '돌아온' 나를 제주의 모든 것들은 반겨주었습니다. 제주의 오름, 바다, 바람, 햇살과 돌담, 삼나무와 조랑말들과 장군이까지.
이 때는 용기내어 영실로 한라산 중턱까지 올랐습니다.
걷고 쉬기를 여러번 반복했고, 이야기나누고, 먹고 마시며 자분자분. 그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두배는 천천히 올랐는데, 두배 천천히 오른 만큼 두배 자세히, 찬찬히 영실길을 둘러보고 담아볼 수 있었습니다.

밤이면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그때 가을, 나무로 난롯불을 지피고 담요를 덮고 책을 읽거나 둘러앉아 이야기하거나 혹은 졸거나. 하면서 또다시 제주에서 5일밤을 머물었습니다.

제주는 사철 아름답고 풍요롭지요.
제주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육지의 그것과는 다른 듯 했고, 제주에서 부는 바람과 햇살은 육지의 그것과 달라서, 그래서 풍요롭습니다.
바람 안에 가득 햇살이 담겨있고, 바다와 한라가 담겨져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네 번째 제주도 이전의 제주와는 다릅니다. 많이 다른것 같군요.
1년이 더 지났고, 그 동안 열심히 치료한 덕에 건강이 많이 회복이 되었고요. 봄도 가을도 아닌 여름이고요,
이번엔 제주가 불러서 간다기 보다는 제주에게, 제주의 바다와 바람과 햇살과 비자나무와 설문대할망께 (그리고 선생님 내외분과 장군이에게) 소개시켜주고픈 그, june과 함께 갑니다.

그와 제주는 꽤나 잘 어울릴텝니다.
바람을 좋아하는 그 니까요.
제주의 바람 가운데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낄것입니다.
바람 타고 출렁이는 초여름 보리순들과 제주 곳곳에 가득한 꽃과 나무들이 우리를 반길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제주여행과는 조금 다른,
그와의 제주여행을 다녀올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