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ane wrote:


제주의 본향당 _ 와흘본향당, 종달리 돈지할망당, 송당본향당


“ 본향당이란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요즘 말로 하자면 주민센터예요. 제주 여인네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본향당에 와서 신고한답니다.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고가 났다, 돈을 벌었다, 농사를 망쳤다, 육지에 갔다 왔다, 자동차를 샀다, 우리 애 이번에 수능시험을 본다, 우리 남편 바람난 것 같다, 이런 모든 것을 신고하고 고해바칩니다.

제주 신의 중요한 특징은 신과 독대 한다는 점입니다. 제주의 신을 할망(할머니)이라고 해요. 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자애로움이 있잖아요. 여성은 소문 내지 않고 자기 얘기와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심리가 있거든요. 답을 몰라서가 아니죠. 그런 하소연을 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겁니다.

심신의 카운슬링 상대로 할망을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유홍준씨의 책 문화유산 답사기 중 그의 제주 지인 ‘순이삼촌’이 본향당에 대해 설명해 놓은 부분입니다.

‘영혼의 동사무소’ 라던지, ‘우리 남편 바람난 것 같다’ 라고 할망에게 넉두리 했다는 부분이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제주에는 550여개의 본향당이 있고, 그 중 와흘 본향당, 송당 본향당, 수산 본향당, 세미 하로산당, 월평 다리쿳당 이렇게 다섯 개가 대표적인 마을 신당 이라고 합니다. 제주에 1만 8천의 신이 살고 있다고 하니 육지에서 그 흔한 교회와 절 보다도 ‘당’이 더 많은 이유가 짐작이 갑니다.


우리 두 사람은 수많은 본향당 중에서 와흘 본향당과 종달리 돈지 할망당, 송당 본향당에 다녀왔습니다.


와흘 본향당을 지키고 있는 두 그루의 팽나무 신목와흘 본향당


















세 곳 본향당의 공통적인 모습은 

당의 중심에 큰 나무(팽나무 이거나 혹은 해송)가 신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나뭇가지마다 색색의 물색천이나 소지(흰색 한지)가 걸려있다는 것, 

제단에 사탕이며 빵, 마실거리 등 제물이 놓여 있다는 것, 

당 안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안정적이고 집중해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돌담으로 둘러 쌓여 있다는 것, 

그리고 막걸리 냄새가 포올폴 난다는 것입니다.


거뭇한 돌담으로 아늑하게 둘러쌓인 송당본향당



 신목 주변에 놓인 물색천과 제물들은 일종의 ‘카운슬링’ 비용을 내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사정에 맞게 양초 한 개, 술 한 병, 과일을 올리기도 하고 돈을 올려도 된다고 합니다. 가장 넉넉한 사람이 할망이 해 입을 물색천을 걸어둡니다. 우아하게 굴곡진 팽나무 기둥과 나뭇가지 가지마다 색동의 물색천이 묶여서 바람에 나부낍니다.

물색천과 나란히 걸린 흰 소지는 당에서 소원을 빌 때 사용하는데, 그 소지를 가슴에 안고 기도를 하면 모든 사연이 소지에 찍혀 할망이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글을 배우지 못한 옛 아녀자들과, 할머니들을 위해 생겨난 사려 깊은 의식입니다.


와흘 본향당 팽나무에 걸린 소지천송당 본향당 신목에 걸린 물색천












첫 날 방문한 와흘 본향당은 꽤나 규모가 컸습니다. 

거뭇거뭇한 제주의 돌담으로 둘러쌓인 당 안은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는지 잡초가 무성하고 제단에 올려진 제물들도 오래된 듯 보였습니다.


와흘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힘든 일, 기쁜 일, 걱정거리 들이 있을 때면 이곳으로 찾아와 조곤조곤 마음 속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풀어냈을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자분하게 들어주는 할망의 품도 그려집니다. 수백 년 된 팽나무와 바람에 날리는 색색의 천들이 괴기스러움을 주지는 않을까 하고 약간 긴장되어 있던 마음은 신당 안에 들어서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당을 둘러싼 돌담은 아늑하기 까지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연과 아픔과 눈물이 이곳에 스며들어 있을지, 얼마나 많은 비움과 내려놓음의 시간이 이곳에서 흘렀을지 생각해 봅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훌훌 털어내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삶의 터로 다시 돌아가는 그 옛날 아낙들의 모습을 팽나무 사이를 돌아 불어오는 바람이 전해줍니다.


와흘 본향당과 송당 본향당이 중산간 마을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종달리 갯것할망당은 제주의 동북쪽 해안, 구좌읍에 있습니다.

이 곳 신당으로 주로 발걸음을 한 이들은 마을의 ‘해녀’와 ‘어부’입니다. 풍어와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것이지요.

바다에 위치한 해신당으로 가는 길 답게 갯것할망당으로 향하는 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해안가 넘어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여럿 뵐 수 있었습니다.


갯것 본향당의 또다른 이름은 생개납 돈짓당 입니다. '생개납'은 이곳 신목인 우묵사스레피의 제줏말 입니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해신당



중산간 마을의 신당이 삶의 고달픈 고민거리들을 털어내어 눈물짓게 만드는 곳이었다면, 이 곳 해신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깊은 숨비소리 내뱉는 해녀들의 기도와 기원이 깃든 곳이어서인지 그 애잔함이 더합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서 있는 신목이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곳을 지키는 신목은 산간마을에서 보던 팽나무가 아니라 ‘우묵사스레피’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나무입니다. 해송 같기도 한 이 나무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기암괴석 사이에서 자라 이리저리 굽어 자세를 잔뜩 낮추었습니다.


역시 오색천과 소지가 바람타고 나부꼈는데, 이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바다의 짠 내음과 섞어 맡아지는 막걸리 냄새. 아니나 다를까 신목 아래 자리 잡은 자그마한 제단에는 빈 막걸리 병과 ‘한라산’소주 병이 가지런하게 혹은 나뒹굴고 있더군요.

달큰하고 시큼하게 맡아지는 막걸리 냄새는 이 신당이 설화 속의, 역사속의 장소가 아니라 아직도 제주 민들의 마음 깊이에 현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신당과 설문대할망은 제주민의 삶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민의 삶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제주 신당의 모습은 육지의 그것처럼 을씨년스럽거나, 어두컴컴하거나, 누추하고 가난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곳은 오히려 따스하고, 포근하고 안락했습니다.


고요한 마을의 가운데 넉넉한 담으로 둘러쌓인 와흘본향당과 송당본향당에서는 저도 슬몃 마음속에 있던 넋두리를 털어놓으며 징징. 할머니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 된 심정으로 기도를 드려보았습니다. 구지 문장을 완성시켜서 이러저러 했다고 논리정연하게 말을 꺼내놓지 않아도, 이미 마음속에 있는 것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모두 전해져서 돌아 나오는 길 안도감에 깊은 숨이 내쉬어졌습니다. 가방에 있던 붉은 손수건이라도 메어놓고 올 것을 말입니다.


송당 본향당


June은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았을까요. 


jane wrote:


세미마을 본향당과 회천 세미마을 석인상


그곳의 바람은 우아하게 불었습니다. 

제주의 중산간 마을로 접어드는 조천읍 와흘리 어디즈음 자리한 세미마을 본향당 팽나무 아래에 앉아 쐬는 바람은, 우아하고 신비로웠습니다.


사실 세미마을 본향당을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아서 헤매었는데, 그 곳이 초행길이었던 우리의 탓도 있지만, 세미마을 본향당은 아마 누구라도 쉽게 찾기 어려웠을 텝니다. 이렇다 할 표지판도 하나 없었고 세미마을 본향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차는 커녕 사람도 다니기 어려울 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그리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어수룩하게 덥힌 잡초와 대나무 숲 사이에 있었으니까요.

표지판을 찾을 수도 없고, 점과 선으로만 간단히 안내해준 무책임한(^^;;) 답사책을 보면서 우리는 약간 당황. 이 곳 지리라면 바싹하실 우체부 아저씨께도 여쭤보았지만 세미마을 본향당은 잘 모르십니다.


June은 길을 찾는 감각이 뛰어나 보였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잘 살핍니다. 표지판을 잘 보기도 하지만, 주변 분위기나 느낌 같은 것으로도 우리가 가려는 장소를 잘 찾아냅니다. 그런 June이 있어 든든. 여행내내 불안함이나 걱정 없이 그를 따랐습니다.


세미마을 본향당을 가는 길도 도로를 따라 가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여긴가?’ 하고는 June이 먼저 앞서길래 따라 들어갔는데, 돌아보고 나와서 답사책을 보니, 그곳이 세미마을 본당이었더군요. 이 곳이 그 곳인지 몰라 사진도 한장 찍지 않았다는^^


답사책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당은 해묵은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대나무밭에 의지한 제단이 있을 뿐이다. 찾아가자면 당 안내문이 있는 입구에서 과수원 쪽으로 100미터 정도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라고. 답사책에서 말하는 (덤불에 가려진) 당 안내문을 우리도 보았던 것 같은데, 제줏말로 써 놓았던지 우리는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노지 귤 밭 사이를 가로질러 덤불을 헤치고 들어서니 대숲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팽나무 고목이 있고 앞 마당 만한 작은 공간이 있고, 고목 아래로 시멘트로 만든 평평한 단상 같은 것이 전부입니다.

감귤 밭에서 일하는 분들이 잠시 쉬시는 곳일까. 하고 우리는 생각했고 불어오는 바람이 바깥의 그것과 다르다고 그는 연신 말했습니다. 

흐음~ 제주 공항에 처음 내려 깊이 숨을 들이쉬며 ‘역시 제주의 공기가 다르네~’ 하며 우리는 말했었지만, 웬걸, 이곳 세미마을 본향당은 진정한 제주의 바람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도로와 불과 1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인데 이 곳 제단에 앉아 맞는 바람은 온도도, 습기도, 냄새도, 소리도 다릅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 제주의 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하다고는 하나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덕에 약간 후덥지근했던 그 바람은 싹 가시고 대숲으로 둘러싸인 신당 안에서 맞는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차갑고 가벼워 바람은 신당 터를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나갑니다. 우아하고 신비롭습니다.

이 곳 신당에서 옛 제주민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을까요.


그는 연신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제주의 바람을 가슴 가득 담았습니다.


다시 과수원길을 돌아 나와 신당 맞은편에 있는 회천 오석상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세미마을 본향당과 회천 세미마을 석인상, 그러니까 다섯 개의 석상이 있는 회천 오석상은 마주해 있습니다. 

‘화천사’라는 절 뒷마당에 자리하고 있어서 불상으로 생각하고 찾아가기 쉽지만 절이 자리하기 전 아주 옛날부터 이 다섯 개의 석상은 자리했다고 합니다. 

그냥 딱 보기에도 근엄하신 부처님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짓궂은 표정, 뚱~한 표정, 마주하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어리숙한 표정을 지은 다섯 개의 석상이 있습니다.

반듯하고 매끈하게 깍아 내린 돌이 아니라 제주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무암 돌을 그냥 그대로 가져다가 세워놓았는데 그 모습 가운데 얼핏얼핏 제주민들의 얼굴이, 포즈가 서려있습니다.
































 

대체로 우리가 찾은 곳들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은 차분하게 그 곳을 둘러볼 수 있었고 여유롭게 바람을 맞거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하는 곳 마다 잊지 않고 삼배를 올립니다.

제주의 문화와, 한라산과, 그들을 지켜온 자연과 신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입니다. 

그리고 또 이러한 소중한 흔적들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