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ane wrote:


세미마을 본향당과 회천 세미마을 석인상


그곳의 바람은 우아하게 불었습니다. 

제주의 중산간 마을로 접어드는 조천읍 와흘리 어디즈음 자리한 세미마을 본향당 팽나무 아래에 앉아 쐬는 바람은, 우아하고 신비로웠습니다.


사실 세미마을 본향당을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아서 헤매었는데, 그 곳이 초행길이었던 우리의 탓도 있지만, 세미마을 본향당은 아마 누구라도 쉽게 찾기 어려웠을 텝니다. 이렇다 할 표지판도 하나 없었고 세미마을 본향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차는 커녕 사람도 다니기 어려울 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그리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어수룩하게 덥힌 잡초와 대나무 숲 사이에 있었으니까요.

표지판을 찾을 수도 없고, 점과 선으로만 간단히 안내해준 무책임한(^^;;) 답사책을 보면서 우리는 약간 당황. 이 곳 지리라면 바싹하실 우체부 아저씨께도 여쭤보았지만 세미마을 본향당은 잘 모르십니다.


June은 길을 찾는 감각이 뛰어나 보였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잘 살핍니다. 표지판을 잘 보기도 하지만, 주변 분위기나 느낌 같은 것으로도 우리가 가려는 장소를 잘 찾아냅니다. 그런 June이 있어 든든. 여행내내 불안함이나 걱정 없이 그를 따랐습니다.


세미마을 본향당을 가는 길도 도로를 따라 가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여긴가?’ 하고는 June이 먼저 앞서길래 따라 들어갔는데, 돌아보고 나와서 답사책을 보니, 그곳이 세미마을 본당이었더군요. 이 곳이 그 곳인지 몰라 사진도 한장 찍지 않았다는^^


답사책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당은 해묵은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대나무밭에 의지한 제단이 있을 뿐이다. 찾아가자면 당 안내문이 있는 입구에서 과수원 쪽으로 100미터 정도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라고. 답사책에서 말하는 (덤불에 가려진) 당 안내문을 우리도 보았던 것 같은데, 제줏말로 써 놓았던지 우리는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노지 귤 밭 사이를 가로질러 덤불을 헤치고 들어서니 대숲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팽나무 고목이 있고 앞 마당 만한 작은 공간이 있고, 고목 아래로 시멘트로 만든 평평한 단상 같은 것이 전부입니다.

감귤 밭에서 일하는 분들이 잠시 쉬시는 곳일까. 하고 우리는 생각했고 불어오는 바람이 바깥의 그것과 다르다고 그는 연신 말했습니다. 

흐음~ 제주 공항에 처음 내려 깊이 숨을 들이쉬며 ‘역시 제주의 공기가 다르네~’ 하며 우리는 말했었지만, 웬걸, 이곳 세미마을 본향당은 진정한 제주의 바람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도로와 불과 1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인데 이 곳 제단에 앉아 맞는 바람은 온도도, 습기도, 냄새도, 소리도 다릅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 제주의 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하다고는 하나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덕에 약간 후덥지근했던 그 바람은 싹 가시고 대숲으로 둘러싸인 신당 안에서 맞는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차갑고 가벼워 바람은 신당 터를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나갑니다. 우아하고 신비롭습니다.

이 곳 신당에서 옛 제주민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을까요.


그는 연신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제주의 바람을 가슴 가득 담았습니다.


다시 과수원길을 돌아 나와 신당 맞은편에 있는 회천 오석상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세미마을 본향당과 회천 세미마을 석인상, 그러니까 다섯 개의 석상이 있는 회천 오석상은 마주해 있습니다. 

‘화천사’라는 절 뒷마당에 자리하고 있어서 불상으로 생각하고 찾아가기 쉽지만 절이 자리하기 전 아주 옛날부터 이 다섯 개의 석상은 자리했다고 합니다. 

그냥 딱 보기에도 근엄하신 부처님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짓궂은 표정, 뚱~한 표정, 마주하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어리숙한 표정을 지은 다섯 개의 석상이 있습니다.

반듯하고 매끈하게 깍아 내린 돌이 아니라 제주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무암 돌을 그냥 그대로 가져다가 세워놓았는데 그 모습 가운데 얼핏얼핏 제주민들의 얼굴이, 포즈가 서려있습니다.
































 

대체로 우리가 찾은 곳들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은 차분하게 그 곳을 둘러볼 수 있었고 여유롭게 바람을 맞거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하는 곳 마다 잊지 않고 삼배를 올립니다.

제주의 문화와, 한라산과, 그들을 지켜온 자연과 신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입니다. 

그리고 또 이러한 소중한 흔적들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