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une] 산천단

여행/제주 2014. 6. 25. 11:33

June wrote:-


흠~ 휴~


제주 산천단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 숨 돌린다. 등줄기엔 땀이 삐직삐직...

"등에 땀 났어요."

제인이 한 말씀하시는데 머쓱하다. 말은 안 해도 긴장한 게 느껴졌으리라.


운전 안 한지가 너무 오래 되었고 인도에서 10년 지내다 온 게 한국에서 남의 차 빌려 오랜만에 운전하는 것에 대해 걱정과 부담으로 작용했다. 인도는 한국과 달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주행방향도 반대이다. 어느덧 익숙해져버려서... 더구나 마지막 해에는 작은 스쿠터 사고까지 난 뒤였으니 뭐랄까, 트라우마 비스무리한 게 생기긴 생긴 모양이다. 한마디로 쫄았지, 뭐. 제주 여행 첫 장소인 산천단에 도착해서 즐거움과 설렘보다는 안도감이 우선이다. 



산천단


고래로부터 고을 수령들께서 한라산을 향해 천신과 산신들께 제사 올리는 곳이다. 해서 제주 왔다고 그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이번 제주 여행의 무사안녕을 빌고자 첫 장소로 선택했다. 발원문을 근사하게 한 자락 해볼 요량이었으나 운전하느라 긴장했던 탓인지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고, 옆에 제인 있어 좀 쑥스럽고, 근사한 말들은 생각도 안 나고... 어물어물...   


곰솔 여덟그루가 멋드러지다. 여덟그루인지 꼭 세어본다. 


여행 내내 내가 사진을 다 찍다시피했는데 여기만큼은 긴장한 탓에 내가 찍은 사진이 없는데 다행이 제인이 몇 장 찍었나보다. 하지만 사진 없이 넘어가기 섭섭하니 제주 바다 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하련다.



어딘가 하면... 제주 북동해안에 있는 어... 월정리! 해수욕장. 너븐숭이 가는 길이었던가?


덧붙이면,

제주 여행/답사에 자동차(렌트카)는 거의 필수이다. 여기저기 제대로 돌아보고자 한다면. 다른 이동수단들도 나름 맛은 있겠지만... 나는 그러니까 15년도 더 전인 어느 해 여름, 이틀 만에 자전거로 제주 일주한 적 있는데 그건 완전 극기훈련, 철인 3종 경기 수준이었음. 렌트카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싸서 놀랐다. 하루에 12,500원 (시기마다, 보험추가에 따라, 업체별로 천차만별) 차도 좋고. 가장 저렴한 경차 예약했는데 같은 가격에 한 단계 높은 2014년 신형 경차 나와서 기분 좋았다는...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한라산 올라갈 때 완전 죽을라고 함. 밟아도 밟아도 대답없는...


jane wrote:


지난 유월 열 하룻날 부터해서 다섯 밤을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가끔 흐릿한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답사와 여행의 중간 즈음 어딘가에 우리는 마음을 두고, 걷고 또 달리며 한라의 품 안에 있었습니다.


6월 11일, 첫째날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산천단-세미마을본향당-회천오석상-와흘본향당-연북정-조천연대-너븐숭이

이름만으로도 낯선 곳들. 세미마을 이라던지, 너븐숭이 같은 곳의 지명은 이름의 한 글자 사이사이에 제주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제주’ 라고 검색창에 써 넣으면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은 연관검색어들.


우리 두 사람의 제주 여행에 한 분의 안내자가 계셨는데, 바로 유홍준 교수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라는 책을 통해서 여섯 날 동안 우리에게 제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시듯 자세히 알려주셔서 어떤 때에는 네비게이션이나 가이드북 보다도 더 자세하게 답사 장소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제주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산천단.

이곳은 한라산의 산신께 제사를 드리던 곳입니다.

제주인들은 탐라국 시절부터해서 해마다 한라산 백록담 높은 곳까지 올라 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겨울에는 추위 속에서 제사 지낼 짐들을 들고 오르내리며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조선 성종에 부임한 제주목사 이약동 선생이 산신제 지내는 장소를 백록담에서 산 아래 마을 이곳 산천단으로 옮겼다 합니다.


산천단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르른 곰솔나무입니다.


600년 이라는 오랜 세월 여덟 그루의 곰솔이 이 곳 산천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지의 소나무들과 조금 다르게 나무 껍질 색깔이 어둡고, 잔가지 없이 꼿꼿하게 하늘로 높이 솟아 있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 있는 곰솔나무들 사이사이로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기도 합니다. 바람이 시원하고, 도로가 가까워 찻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곰솔나무 사이사이를 비켜지나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허리 숙여 세 번 절을 올려 우리 두 사람은 제주입성을 고했습니다.

나란한 그와 나의 거리가 딱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산천단. 그 옛날 제주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제단 앞에 서서 제주의 무수한 신들께 인사했습니다.

다부지게 자리를 지키고 선 산천단의 여덟 그루 곰솔나무들은 마치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 마냥 느껴집니다.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라고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한 마디가 튀어나옵니다. 키 크으신 곰솔나무가 "오냐. 자알 왔다~" 하고 허헛 웃음을 내 보이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프지 않고, 사고 나지 않고(여행 내내 그가 운전을 해서 다녔기 때문에)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치기를 은근하게 부탁드려 봅니다.


마음 한 켠에 기쁨과 편안함이 동시에 샘솟으면서 제주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에 오느라 바쁘고 서둘렀던 마음이 한 숨 돌려지며 차분해지고 한가로워졌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제주에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