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멋을 내어보는
이 몸뚱이를 "나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살아 가면서 
이 육신을 위해
돈과 시간, 열정, 정성을 쏟아 붓습니다
예뻐져라,
멋져라,
섹시해져라,
날씬해져라,
병들지 마라,
늙지 마라,
제발 죽지 마라...!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 내 간절한 바램과는 전혀 다르게 
살찌고, 야위고,
병이 들락 거리고
노쇠화되고 
암에 노출되고 
기억이 점점 상실되고
언젠가는 죽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내가 내 것인가?
자녀가 내 것인가?
친구들이 내 것인가?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닐진대...!
누구를 내 것이라 하고
어느 것을 내 것이라고 하던가?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만나고
흩어지는 구름인 것을
미워도 내 인연
고와도 내 인연


이 세상에서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고통인 것을...!


피할 수 없으면 껴안아서
내 체온으로 다 녹이자
누가 해도 할 일이라면
내가 하겠다.


스스로 나서서 기쁘게 일하자
언제 해도 할 일이라면
미적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에 하자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 쏟자
운다고 모든 일이 풀린다면
하루종일 울겠다.
짜증부려 일이 해결된다면
하루종일 얼굴 찌푸리겠습니다.


싸워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누구와도 미친듯이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일은
풀려가는 순서가 있고 순리가 있습니다


내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배려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낮춰 논 눈높이
내가 조금 덜 챙긴 그 공간


이런 여유와 촉촉한 인심이
나 보다 더 불우한 이웃은
물론 다른 생명체들의 
희망 공간이 됩니다.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정말 고마움과 감사함의 연속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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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쓰는 편지 -도법스님-  (0) 2014.06.10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늙은 몸을 이끌고
온 나라를 걷고 또 걸은 도법스님이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 회향을 앞두고
처절히 돌아보며 길에서 쓴 
눈물어린 편지를 올린다.

그동안 저는 
바깥 얘기를 계속해왔어요.
사회 이야기, 겨레 문제 그런데 
이 편지는 제게 쓴 편지에요. 사뭇 긴데,
제게 쓴 편지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쓴 편지이기도 합니다.

벗이여,
내일이면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가 끝나네.
화쟁 깃발을 들고 역사 골목골목을 걸었네.
그 어느 곳도 눈물 젖지 않은 땅이 없었네.
생명이 안락하고 행복한 한반도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온 겨레, 온 국민이 치열하게 몸부림쳐 왔음을 봤네.

걷는 내내 역사 속 붓다를 떠올렸네.
붓다가 오늘 한국 땅에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알고 보니 붓다는 어느 하루도 절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더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을길을 걸었더군.
피눈물로 삶을 가꾸고 있는 민중 밥을 얻어먹었더군.
식구 끼니를 걱정하는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고 살았더군.
때로는 저주를 받기도 하고 때론 밥을 얻지 못해 굶기도 했더군.
그런데도 늘 적디적은 소유가치로 생존을 이은 반면
무한한 존재가치로 살았기에 늘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
그이가 붓다더군. 역사 속 붓다, 그이 하루하루는 눈물겨웠네.

역사 속 붓다,
그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네.
그이 하루하루는 나를 부끄럽게 했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을까?
무엇이 그렇게 살도록 했을까?
경전에서는 한결같이 생명들을 안락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네.

붓다란 거울에 나를 비추어봤네.
붓다와 닮은 구석이 거의 없더군.
가장 다른 것을 꼽아보니
평소 절을 벗어나지 않고 절 안에만 있었네.
한 번도 굶은 적이 없네.
무시를 당하기는커녕 대접만 받고 살았네.
피눈물로 얼룩진 밥을 먹은 적이 없더군.
생각이나 말이 아니고 실제로
생명들 안락과 행복을 위해 살지 않았네.
오로지 내 편안함, 내 고귀함, 내 깨달음,
내 완성, 내 행복을 위해 살았네.

그런데 문제는
내 삶이 편안하지도, 고귀하지도,
깨달아지지도, 완성되어지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네.
붓다 제자라면 붓다를 닮아야 마땅할 텐데
이름은 불자인데 줄기와 모습은 전혀 달랐네.
어쩌면 붓다와 다른 길을 걸어왔을지도 모르겠네.
붓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내 삶은 왜 붓다와 닮지 않았던 것일까?

유마 힐 말씀이 떠올랐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네.
중생이 편안해야 나도 편안하네.
붓다는 늘 연기세계관으로 삶을 바로보고 있었네.
연기 눈으로 보면 그대가 나이고 내가 그대이네.
내가 우주이고 우주나 나이네.
어느 슬픔, 아픔 문제도 내 슬픔, 아픔 문제 아닌 게 없었네.
그러므로 생명 안락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지 않을 수 없었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하는가?
저를 위해 그이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그래야 했네.
저, 그대, 세상 평화와 행복을 위해 그래야 했네.
그랬기에 붓다 그이는 평화롭고 행복했네.

돌이켜보니 나는 거의 한 번도 온 존재를 바쳐
연기 눈으로 삶을,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네.
대부분 내 인생, 내 절,
내 종단, 내 불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삶을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네.
그 결과가 오늘 내 모습이네. 그러니까
말은 불자인데 실제는 붓다가 비판하고
부정한 삶을 살아온 셈이네.
마땅히 붓다와 닮을 턱이 없었네.
순례 길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점에 눈을 뜬 것이네. 늦었지만
다시 붓다를 닮을 수 있도록
발심과 서원을 해 출가를 해야겠네.

이제 남은 세월이 얼마 되지 않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내 남은 여정을 붓다와 닮은 모습으로 살고 싶네.
지극정성을 다해 흉내라도 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야 여한이 덜할 것으로 여겨지네.
다시 출가를 꿈꿔야 하겠네.
진정 붓다와 닮은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벗이여,
함께 길을 떠났으면 하네.
더 늦기 전에 붓다처럼 당당하게
길 가는 것을 꿈꾸네.
괜찮은 꿈이라고 여겨지는데 어떤가?
잘 지내게.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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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교황의 법문  (0) 2014.06.10

Jane wrote :


오늘은 어제랑 달리 해도 나지 않고 날이 흐릿했지만, 함께 길을 나서서 아프리카 지역선정 모임, 국제협력 스터디 모임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공부를 엄청 한 느낌이고, 국제협력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해 본 적 없이 짧은 경험의 조각들로 마음 속에서 국제협력에 대한 '로망'만 품어왔던 저로서는 귀가 쫑긋!!. 오가는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어요.

스터디를 빙자해 함께 손 맞잡고 걷는 종로 거리들도 저는 참 좋았구요. 약속시간이 바투게 다가오지만, 길거리 걸어가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그것들을 소재삼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 느낌들이 집에 돌아온 지금, 아직도 마음에 잔잔하게 남아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은 노래중에 이선희씨가 부른 노랜데요,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라는 노래가 있거든요.

멜로디나 이선희씨 목소리가 개인적으로 그다지 편안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노래를 엄청 힘들여서 부르는 듯한 느낌^^;;) 가사들 중 몇몇 부분은 마음에 들어와서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뭐 이런 가사들...


-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건 기적이었음을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


사실, '운명'이라거나 '꿈'. 이런 단어들이 그닥 마음이 들지는 않았지만요

'서로를 알아보고' 라거나,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나는 반대의 경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을 받는 것 만 알던 내가 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되었으니) 라고 노래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멈추어 지더라구요.

가끔 일상처럼 June과 함께 있다가도, 우리가 함께인 것이 낯설고 실감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June에게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저는 조금 '기적'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던 듯도 해요. '기적'이라는게 뭐 별거 있나요. 눈 앞에서 마술이 부려져야만 기적인가요 뭐.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기적이구나. 라고 그런 낯섦의 순간순간에 저는 느끼는 것 같아요.


오늘 국제협력 모임을 하면서라던지,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혹은 특별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들을 우리 두사람이 함께 나눌 때에도 참 감사하다. 하고 느껴요.

이런 고민들, 생각들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 '사이'를 우리가 나눌 수 있어서 좋군. 하고 생각해요.

국제협력이나 June이 하고자 하는 마을운동,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들,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잘 남겨서 자료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예전부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스터디그룹 안에서 좀 실현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에 오늘 모임하면서 두근두근. 했답니다.


그렇게 두근두근. 해대는 저를 보면서 한편으로

'나는 내 이야기, 생각들을 얼마만큼 편안하고 가볍게 June과 나누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저는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귀담아, 집중해서 잘 하는 편인데 반대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에 비해 익숙하지 않더라구요. 글이라던가 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차분하게 풀어내는데, 소리내어 이야기 할 때 조금 움츠려 드는 것 같다는 돌아봄. 왜 움츠려 들까. 하는 고민도 꼬리물고 따라오네요. 

지금 막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제가 June에게 이런저런 제 생각을 주절주절 이야기할 때 

'음~', '응..' (끄덕끄덕) 

하며 제 이야기를 차분하게 잘 들어주던 그의 모습이에요. 

이렇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상대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귀로, 눈으로 보아지고 느껴질 때, 이야기 하는 사람은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서, 더 신이나 재잘재잘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튼,

서로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생각이 커져가고, 구체화 되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재미가 있고,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게 하는 그런 '사이'

요런 것을 저는 '기적' 이라고 해두고 싶네요.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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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wrote:- 


EBS 스페이스 공감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는 뮤지션 [시와]편 구경함. 물론 Jane이랑.

[화양연화]라는 노래가 참 좋아서 노래 부르는 사람까지 눈여겨 보게 되었는데,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기회는 정녕 없나보다.

노래 예쁘고 노래하는 사람 귀엽다.

좀 지루하긴 했지만...


Jane이 잘 먹고 있어서 사실은 노래 구경하는 것보다 뭐 좀 먹여볼까 하는 생각이, 뭐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끝나고 지하철 역에서 고구마 들어간 애플 파이 하나 멕인 게 다였지만.

아, 샌드위치도 같이 먹었구나. 고구마 애플 파이 달근하니 맛있더라.


집에 와선 똥구리랑 돼지 두루치기에 막걸리 한 잔 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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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료를 빛나게 만들어 줄 인포그래픽 제작 도구 

12가지

정보나 자료, 지식 등 전달해야 하는 내용을 시각화하여 한 페이지에 표현하는 인포그래픽. 한 장의 인포그래픽이 수천 자의 글보다 강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쏟아지는 콘텐츠들 속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인포그래픽은 더 눈길을 끌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인포그래픽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욕심을 냈다가도 왠지 모르게 디자인 전문 지식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아 금세 포기하게 되곤 하지요.

하지만 여기 <당신의 자료를 빛나게 만들어 줄 인포그래픽 제작 도구 12가지>가 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거나, 통계를 정리해야 할 때,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 때뿐만 아니라 이력서를 작성할 때, 나의 SNS 계정을 요약할 때 등 인포그래픽을 다양한 경우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소개해드리는 인포그래픽 도구를 이용하여 ‘나만의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보세요^^

 

1. 인사담당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포그래픽 이력서를 만들 수 있는 Vizualize.Me

비쥬얼라이즈미

Vizualize.me는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나만의 이력서를 만들 수 있는 홈페이지입니다. 취업난이 가중되어 경쟁이 치열해지는 요즘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 제작 도구 중 하나죠. 학력, 경력, 관심사, 수상 내용 등 원하는 항목만 입력하세요. Vizualize.me가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드립니다.

 

2. 다양한 시각화 도구가 모여 있는 Piktochart

픽토차트

인포그래픽을 만들 때 필요한 다양한 테마와 아이콘, 벡터, 이미지, 차트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 Piktochart를 소개합니다. 아주 쉽게 글자 크기와 폰트, 색깔 지정이 가능하고 완성된 인포그래픽은 html로 바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3.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비쥬얼 인포그래픽 테마를 참고 할 수 있는 Easel.Ly

이질리

Easel.ly는 여러분의 시각화 자료와 아이디어를 온라인에 생성 및 공유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vhemes’(visual + themes)이라는 비쥬얼 테마를 사용할 수도 있는 사이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테마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쉽고 빠르게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습니다.

 

4. 마케터, 디자이너, 애널리스트들에게 유용한 Visual.Ly

비쥬얼리

Visual.ly는 여러분이 올렸던 콘텐츠들을 분석하여 어떤 콘텐츠가 다른 이용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는지 시각화해주는 인포그래픽 사이트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애널러틱스 등 SNS에서 인기 있었던 콘텐츠를 정리해줍니다. 빅데이터에 민감한 마케터, 디자이너, 애널리스트들에게 유용한 사이트이지요.

 

5. 데이터를 입력하면 바로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주는 Infogr.Am

인포그램

Infogr.am은 30여 개 이상의 차트를 통해 여러분의 데이터를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줍니다. 사이트에 데이터를 입력/수정하면 즉시 인포그래픽이 만들어지고, PNG 이미지나 PDF 파일로 다운로드도 할 수 있습니다. 발표 또는 첨부 파일에 활용할 때 매우 유용하겠지요?

 

6. IBM에서 제공하는 수만 가지의 시각 자료가 모여있는 Many Eyes

매니아이즈

Many Eyes 는 IBM 그룹에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다!’라는 신념으로 만든 사이트입니다. 일상생활에 관련된 자료부터 전문 자료까지 다양한 범위의 시각 자료를 볼 수 있고, 쉽게 편집할 수도 있는 사이트입니다.

 

7. 인포그래픽 발행 이후 효과 측정까지 서비스까지 제공해주는 Venngage

벤게이지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서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그 자료를 누가 봤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했는지 알 수 없으면 참 답답하죠? Venngage는 인포그래픽 제작뿐 아니라 배포 이후의 온라인 노출 효과 측정까지 지원해주는 사이트입니다.

 

8. 공유하기 쉬운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ICharts

아이차트

공을 들여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인포그래픽을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가 어렵다면 정말 속상하겠죠? iChart는 데이터들을 차트로 만들어주고, 또 이후에 다양한 형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iChart를 이용한다면 데이터와 온라인 호환성에 대한 걱정은 접어도 되겠습니다.

 

9. 나만의 타임라인을 인포그래픽 형태로 만들어주는 Dipity

디피티

Dipity는 웹상에서 무료로 타임라인을 만들어주는 사이트입니다. 특정 주제에 맞춰 날짜와 시간대별로 연대기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역사, 유명 인사의 일대기, 특정 단체의 사건 사고 등을 타임라인 형태로 정리할 수 있지요. 기존에 있던 인포그래픽과는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면 Dipity를 추천합니다.

 

10.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로 타임라인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는 Timeline JS

타임라인

TimelineJS는 텍스트나 데이터만을 이용한 인포그래픽이 아닌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그림, 사진, 영상, 그리고 사전의 인용구나 지도, SNS까지 연동하여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초보자도 구글 문서로 스프레드시트를 작성만 하면 타임라인 생성이 가능합니다.

 

11. 지도, 지역 기반의 데이터를 시각화할 수 있는 StatSilk

스테이트슬라이드

StatSilk는 다가오는 선거철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 사이트입니다. 지역 기반의 데이터나 지도를 시각화할 때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지도, 통계 자료를 정리할 때 아주 좋습니다.

 

12. 나의 사진 찍는 습관을 분석해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주는 안드로이드 앱 InFoto Free

포토인포

여러분이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사진 찍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바로 InFoto Free입니다. 이 앱은 나의 사진 앨범, 갤러리에 접근하여 자주 사진 찍는 시간과 장소를 분석해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줍니다.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은 후 InFoto Free로 인포그래픽을 만들면 정말 뿌듯하겠네요.

 

왠지 전문가만의 분야이고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던 인포그래픽의 벽. 오늘 소개해 드린 12개 사이트로 인포그래픽을 정복해 보아요~^^

@이외에도 평소 눈 여겨 보았던 인포그래픽 사이트가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더 많은 정보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은 소셜미디어 전략연구소 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1. 싹쓸이해서 20피트 컨테이너 하나에 실어 인도로 보낸다.


2. 용도


 - 재봉해서 판매 : 쇼핑백, 손가방, 마대 자루. 수요 많음. 부녀자 재봉반 소득 창출 

 - 구호품 활용 : 겨울철 동물 옷, 찬 흙바닥 깔개, 차양/방풍막, 

 - 마을개발 사업에 활용 : 천막, 두껍게 만들어 단체모임 시 깔개, 마을회관 카페트, 펌프나 우물 옆 공용 탈의실이나 샤워실에 벽돌 대신 간이 천막 설치, 들것 제작 (군대에서 사용하는 나무 작대기 두 개 양쪽에 끼워 사용하는 단카)   

 - 학생들 미술/재봉 실습재료

 - 깨끗한 흰색 부위는 다양한 크기로 잘라 현수막으로 재사용 가능 : 인도에서는 페인트 붓글씨로 현수막 제작   


3. 고려사항

 - 국내 수거/보관, 포장, 컨테이너 실은 트럭 들어올 수 있는 공간 있는 창고 필요

 - 수거해서 이동, 보관하는 데 드는 물류비, 창고비 : 약 백만원

 - 20피트 컨테이너 : 인도까지 약 이백만원(?)

 - 인도 통관/운송비 : 최소 한화 이백만원

   -> 물류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이 비용 (약 250,000 인도루피)이면 경제적으로만 봤을 때는 현지에서 천 떠서 하는 게 낫다.

   -> 운송에 드는 에너지 낭비 등등... 별 매력 없다.


아! JANE!

사띠 캔들 재활용 포장재로 사용 가능. 주머니 형태로 만들어서 목줄 달아 조여 주는 방식. 구입 대비 비용 비교 필요. 



아래는 기사


다 쓰고 남은 폐현수막이 필요한 분들은 자치구 담당과로 연락하셔서 무료로 가져가세요.

폐현수막은 농사용 가림막, 미술 도구, 장바구니, 폐기물 마대 등 여러가지로 재탄생 할 수 있습니다.

다쓴 현수막이라도 소각하거나 폐기하는 것보다 한번 더 사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함께 사는 우리 지구에 한정적으로 남아 있는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겠지요.

현수막재활용 가방

사진출처: http://blog.daum.net/loveacrc/1591

 

 <자치구 폐현수막 담당과>

 

자치구

담당과

전화번호

종로

도시디자인과

2148-2754

중구

도시디자인과

3396-5982

용산구

도시디자인과

2199-7572

성동구

건설관리과

2286-6043

광진구

도시디자인과

450-7707

동대문구

도시디자인과

2127-4602

중랑구

도시디자인과

2094-2264

성북구

도시디자인과

920-4372

강북구

디자인건축과

901-6911

도봉구

도시디자인과

2289-8734

노원구

도시관리과

2116-3879

은평구

도시디자인과

351-7471

서대문구

건설관리과

330-1741

마포구

도시경관과

3153-9453

양천구

건설관리과

2620-3621

강서구

도시디자인과

2600-6400

구로구

청소행정과

860-2376

금천구

건설행정과

2627-1583

영등포구

건설관리과

2670-4194

동작구

도시계획과
청소행정과

820-1694
820-9759

관악구

도시디자인과

881-5047

서초구

도시계획과

2155-6803

강남구

도시계획과

3423-6134

송파구

주택관리과

2147-2918

강동구

도시디자인과

3425-6155

 

 


이 스킨 만들어준 분에 대한 나름 예의인 것 같기도 하고 스킨 변경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소스 변경한 내역을 남기고자 함.


글씨가 너무 작아 보여 본문 글 쓰기 관련된 부분의 style.css 파일 변경함.


/*본문*/

.article{...}내의


1. font-size를 12에서 13으로 변경

2. line-height를 20에서 22로 변경


글쓰기 메뉴에서 디폴트 값은 그대로 보이는데

블로그 보기하면 변경된 값으로 보여지니 상관말고 그냥 쓰면 됨


JJ



'블로그 꾸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문 폰트 변경  (3) 2014.10.02
jane wrote:


늘 누군가 데려다주고 안내해주는 제주만 다니다가 이번에는 함께 찾아가고 직접 마주하는 제주를 갑니다.
가이드북을 사서 꼼꼼히 읽어보고, 여행 루트를 짜다가 가만가만 생각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우리 땅, 낯선마을 제주를 여행하러가는데 여행루트로 짜놓은 곳의 절반이상은 '제주의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외국 건축가가 지은 교회, 박물관을 보려했던 것입니다.외국에서 살다온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이국적인 게스트하우스에 가보겠노라했고, 거대 자본가가 투자한 (결과적으로는 제주를 무너뜨리는) 명소에 가려했습니다.
이상하더군요.
제주를 보러 가겠다하면서, 가장 제주 답지 못한 곳을 가려하다니.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어 리셋.
다시 여행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무엇이 내게 남았으면 좋겠는지, 무엇을 알고싶은지, 지금의 삶에서 결핍된 것은 무엇인지.
여행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현실에서 거대자본에, 외국문화에 파묻혀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것은 얼굴도 모르고 언어도 다른 세기의 건축가가 지은 멋진 건물이 아니라
제주를 지켜온 영엄이 깃든 마을의 보호수와 신당인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물질을 나가는 해녀할망의 숨비소리를 듣고싶은 것입니다. 지나가던 바람도 쉬었다 가라고 구멍을 송송 내어 쌓아둔 제주의 돌담을 보고싶은 것입니다.
세월이 깎아놓은 주상절리대와 거문오름에서 흘러 내려 생겼다는 만장굴과 김녕굴을, 청보리 흐드러지게 핀 제주의 들판을 보고싶습니다.
고 김영갑 작가가 그렇게도 담아내고자 했던 용눈이오름에서의 바람을 마음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오백년, 육백년 그 자리를 지켜온 우리의 어버이, 비자나무를 조우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여행의 방향을 다잡고 다시 여행계획을 세워보는 중입니다.
주로 중산간마을과 해안에 자리한 오래된,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여행해볼까 합니다. 그곳을 걷고, 달려볼까합니다.
영실길 따라 한라산도 올라야지요.

우리 여행의 가이드북은 유홍준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으로 정했습니다.
20대 유년시절 선생님의 이 책들을 가이드북삼아 남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는 june의 의견입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알아가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이지요.

june에게도 제주가 낯선곳은 아닐테지만, 지난 제주여행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소중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혹은 새로운 제주의 길 위를 함께 달려도 좋겠습니다.

어디라도
우리 함께
그 길 위에서 손맞잡고 이야기 나누며. 마음 나누며.
바람과 햇살, 호흡을 나누며.


jane wrote :


녹음이 짙어져가는 여름의 초입.
우리는 제주로 갑니다.

여고시절에 제주로 수학여행 갔던 것까지 합을 하면 네 번째 제주행 입니다.

수학여행으로 갔던 제주가 그 중 최악이었는데, 3일의 여정 중 절반 이상을 버스를 타고 폭풍우 속을 뚫고 제주도로를 달린 것과 거뭇 거뭇한 현무암으로 된 돌담이 나란한 민속마을 구석까지 안내 받아서 간 곳이 고작 설탕 섞인 꿀을 순진한 여고생들에게 비싼 값에 팔던 선물의 집이었던 것은 그 중 가장 지우고 싶은 제주의 기억입니다.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에 숙소는 제주 언덕 위에 자리한 수녀원이었습니다. 어디였던가 지명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깊은 밤 휘몰아치던 바람을 그대로 받아내던 수녀원과 그 곳의 수녀님들은 어렴풋이 남아있습니다.
그 수녀원 방 구석에서 친구들과 처음으로 술을 마신 기억도 납니다.
소주를 병째 들고올 수 없었기 때문에 사이다 병, 오렌지주스병, 이온음료병에 소주를 가득 담아 옷 속에 고이고이 모셔 제주바다를 건너 왔습니다. 그 소주들에서는 달큰한 사이다 냄새가, 새큼한 오렌지냄새가 났었지만, 태어나 처음 마신 소주의 맛은 그것을 담아온 병의 원래 음료처럼 달거나 새큼하지 않더군요. 맛도 없는 소주를 우리는 오기로, 재미로, 호기심으로 마셔댔고
결국 그득하니 취한 우리를, 우리만한 딸자식이 있던 담임선생님이 챙겨 잠자리에 뉘여주셨습니다.
빈속에 마시고 자면 다음날 속쓰리다고 새우깡을 사다주셨던가요. 뜨거운 물을 떠다 주셨던것도 같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발걸음 한 제주는 첫번째 제주행과는 많이 다릅니다.
일단 7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그 7년의 세월 사이에 나는 한번도 내 삶에서 제주를 떠올려 본적이 없었고 제주를 떠올리지 않은 만큼이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듯도 합니다.

두번째 제주는 지난 봄.
내가 간것이 아니고 제주가 나를 부른 것입니다.
제주의 큰 신이라는 한라의 설문대할망이, 제주에 산다는 수백의 신들이, 중산간 원시림 속에서 오백년을 살아온 비자나무가 나를 부른듯 했습니다.
어서 와서 쉬었다 가라고 말이예요.
아프고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쏙 빠져 제대로 말을 할 힘도 없었지만, 제주로 갔습니다. 가방에는 한가득 먹어야할 약들과 음식들이 있었고 짐이라고 할 것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아픈 저를 제주공항까지 마중나온건 제주에 사는 지인 선생님과 그 집 강아지 '장군이'.
강아지 중에도 몸집이 작은편에 속하는 마르티즈 종인데, 이름은 장군이 입니다. 이름처럼 장군감입니다. 왠만해서는 잘 짖지 않고 우직하고 때를 쓰거나 징징거리는 법 없이 잘 기다릴 줄 알고 눈치가 빠른데다가, 용눈이 오름을 오를 때는 저보다 몸집이 서른배는 족히 큰, 달려오는 황소때 앞에서도 피하지 않고 뒷다리에 힘을 가득실어 땅을 단단히 지지하고서는 사납게 짖던 녀석입니다.
그 녀석과 선생님 내외분의 보살핌을 받으며 5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대신 중산간 마을, 4.3유적지, 원시림 사이를 걸었습니다. 힘이 들어 하루에 겨우 한 곳 정도 둘러보고 걷고,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밥을 지어 먹고 이야기 나누다 잠드는. 그런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제주에 5일이나 머물렀지만 둘러본 곳은 다섯곳이 채 되지 않습니다. 전날 갔던 곳이 너무 좋아 다음 날 다시가곤 했고, 사려니 숲 한가운데에 그냥 가만히, 한참을 앉아있다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제주 할망의 기운을 듬뿍 받아 건강해져서 돌아가길, 치료법이 없다는 이 병이 낫기를, 은근한 기적을 바랬지만 나는 돌아가는 날 많이 지친 채로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가방 속은 다 먹은 약의 빈자리로 가벼웠지만 몸은 무거웠고 비행은 버거웠습니다.

쉬엄쉬엄 다니는 법을 더 익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몸에 맞추는 수 밖에요. 자꾸만 욕심이 나고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자분자분 합니다' 하는 말을 마음에 새기며 1년을 연습했습니다. 또 다시 지난시간들 처럼 몸을 돌보지 않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번째 제주는 가을즈음이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르다 못해 깊어만가고, 제주의 선생님 내외분이 입으시는 제주의 햇살 머금은 갈옷은 그 때의 날씨와 참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그런 가을날, 제주가 나를 다시 불러 발걸음 했지요.
봄 보다 조금 더 건강해져서 다시 제주로 '돌아온' 나를 제주의 모든 것들은 반겨주었습니다. 제주의 오름, 바다, 바람, 햇살과 돌담, 삼나무와 조랑말들과 장군이까지.
이 때는 용기내어 영실로 한라산 중턱까지 올랐습니다.
걷고 쉬기를 여러번 반복했고, 이야기나누고, 먹고 마시며 자분자분. 그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두배는 천천히 올랐는데, 두배 천천히 오른 만큼 두배 자세히, 찬찬히 영실길을 둘러보고 담아볼 수 있었습니다.

밤이면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그때 가을, 나무로 난롯불을 지피고 담요를 덮고 책을 읽거나 둘러앉아 이야기하거나 혹은 졸거나. 하면서 또다시 제주에서 5일밤을 머물었습니다.

제주는 사철 아름답고 풍요롭지요.
제주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육지의 그것과는 다른 듯 했고, 제주에서 부는 바람과 햇살은 육지의 그것과 달라서, 그래서 풍요롭습니다.
바람 안에 가득 햇살이 담겨있고, 바다와 한라가 담겨져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네 번째 제주도 이전의 제주와는 다릅니다. 많이 다른것 같군요.
1년이 더 지났고, 그 동안 열심히 치료한 덕에 건강이 많이 회복이 되었고요. 봄도 가을도 아닌 여름이고요,
이번엔 제주가 불러서 간다기 보다는 제주에게, 제주의 바다와 바람과 햇살과 비자나무와 설문대할망께 (그리고 선생님 내외분과 장군이에게) 소개시켜주고픈 그, june과 함께 갑니다.

그와 제주는 꽤나 잘 어울릴텝니다.
바람을 좋아하는 그 니까요.
제주의 바람 가운데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낄것입니다.
바람 타고 출렁이는 초여름 보리순들과 제주 곳곳에 가득한 꽃과 나무들이 우리를 반길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제주여행과는 조금 다른,
그와의 제주여행을 다녀올까 합니다.



제주도 여행 떠나기 전에 이런 저런 책자들과 인터넷 자료들 보면서 마음이 들떠 있었다. 제주도 지도만 바라보고 있어도 흥분되고 내심 '여기 이 정도면 살기에 괜찮아 보이는데...' 하며 괜한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냥 생각뿐인 거였지만 그런 상상마저도 경계케 하는 책이 있다. '그렇겠지, 뭐 말처럼 다 좋겠어?'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 살짝 드는 건 사실이다. 잘 살펴 볼 일이다.

이 문구 마음에 든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또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책 첫머리에 인용된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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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섬에 살아봐서 아는데…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시대의창 펴냄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350호] 승인 2014.06.03  08:48:25
신생 도시 세종시에 이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 유입률을 기록하는 곳은? 바로 제주도다. 공기가 좋아서, 바다가 좋아서, 찌든 도시를 피해서 등의 이유로 많은 청·장·노년들이 기존 직장과 집을 포기하고 제주도 이민을 감행한다. 육지에 남은 이들에게 그들은 자신이 차마 가지 못한 길을 용단(勇斷)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저자 오동명씨(57)는 들뜬 마음으로 제주도행 편도 티켓을 끊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

오동명씨는 현재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 산다. 오씨는 5년 전 제주도로 건너갔다. 서귀포 깊숙이 자리를 잡고 산책도 하고 낚시도 하고 글도 썼다. 하지만 ‘3박4일 여행지’가 아닌 삶터로서의 제주도는 기대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습기와 바람은 질리도록 강했다. 호젓한 밤길은 들개들의 공격으로 위험했고, 멋있게 자란 삼나무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키는 꽃가루를 잔뜩 날렸다. 월세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제주도 토박이들은 이주민들에게 사실상 ‘입도세’를 요구했다.

자신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숱한 이주민들을 보면서 오씨는 그것이 결국 이주민들 스스로의 착각에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 ‘제주도다운’ 것에 대한 환상이 잘못됐던 것이다. 이주민들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제주도민들은 너무 배타적”이라고 불평했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오씨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오씨는 특히 ‘무작정’ 제주도로 건너오는 20~30대 청년들을 걱정했다. 이들이 향하는 일자리는 대개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은행에서 대출을 얻어 멋있게 차려놓은 카페가 수익이 나지 않아 실망하거나, 반대로 장사가 너무 잘돼 서울에서보다 더 바쁜 삶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이를 많이 보아왔다. 부지런히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생겼지만 임대료만 터무니없이 오르고 누구 하나 제대로 정착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오씨가 제주도행을 권하고 싶은 부류는 바로 ‘포기의 철학’을 지닌 이들이다. 기존 직업과 수입과 환경을 포기하고 건너왔으면서도 ‘포기’를 못해 허덕이는 사람들은 굳이 제주도에 올 필요가 없었다. 제주도에 온 애초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서울에서처럼 돈벌이에 매달리거나 서울 대치동을 옮겨놓은 듯한 제주도 시내 학원가에서 아이를 뺑뺑이 돌리고 있는 이들이다. 오씨는 “이전에 누리던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진정한 제주도의 멋을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누리던 걸 포기해야 제주가 즐겁다”

오씨야말로 과거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나선 표본이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재직하던 1999년, 오씨는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써 붙인 뒤 회사를 떠났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을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자사 논조를 비판하는 글이었다. 

큰 직장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사는 삶을 바꾼 김에 오씨는 ‘지리적으로도’ 자주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춘천, 홍천, 대전을 각각 1년씩 거쳐 제주도로 갔다. 원래 1년을 예상하고 갔던 제주도살이는 4년으로 늘었고,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는 그 말미에 쓴 책이다.

오씨의 현재 거주지는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의 토담집이다. 매일 저녁 달라지는 제주도의 총천연색 저녁노을이 때때로 그립지만, 동네 아이들의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함께 텃밭도 가꾸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또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책 첫머리에 인용된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