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jane wrote:


제주의 본향당 _ 와흘본향당, 종달리 돈지할망당, 송당본향당


“ 본향당이란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요즘 말로 하자면 주민센터예요. 제주 여인네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본향당에 와서 신고한답니다.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고가 났다, 돈을 벌었다, 농사를 망쳤다, 육지에 갔다 왔다, 자동차를 샀다, 우리 애 이번에 수능시험을 본다, 우리 남편 바람난 것 같다, 이런 모든 것을 신고하고 고해바칩니다.

제주 신의 중요한 특징은 신과 독대 한다는 점입니다. 제주의 신을 할망(할머니)이라고 해요. 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자애로움이 있잖아요. 여성은 소문 내지 않고 자기 얘기와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심리가 있거든요. 답을 몰라서가 아니죠. 그런 하소연을 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겁니다.

심신의 카운슬링 상대로 할망을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유홍준씨의 책 문화유산 답사기 중 그의 제주 지인 ‘순이삼촌’이 본향당에 대해 설명해 놓은 부분입니다.

‘영혼의 동사무소’ 라던지, ‘우리 남편 바람난 것 같다’ 라고 할망에게 넉두리 했다는 부분이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제주에는 550여개의 본향당이 있고, 그 중 와흘 본향당, 송당 본향당, 수산 본향당, 세미 하로산당, 월평 다리쿳당 이렇게 다섯 개가 대표적인 마을 신당 이라고 합니다. 제주에 1만 8천의 신이 살고 있다고 하니 육지에서 그 흔한 교회와 절 보다도 ‘당’이 더 많은 이유가 짐작이 갑니다.


우리 두 사람은 수많은 본향당 중에서 와흘 본향당과 종달리 돈지 할망당, 송당 본향당에 다녀왔습니다.


와흘 본향당을 지키고 있는 두 그루의 팽나무 신목와흘 본향당


















세 곳 본향당의 공통적인 모습은 

당의 중심에 큰 나무(팽나무 이거나 혹은 해송)가 신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나뭇가지마다 색색의 물색천이나 소지(흰색 한지)가 걸려있다는 것, 

제단에 사탕이며 빵, 마실거리 등 제물이 놓여 있다는 것, 

당 안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안정적이고 집중해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돌담으로 둘러 쌓여 있다는 것, 

그리고 막걸리 냄새가 포올폴 난다는 것입니다.


거뭇한 돌담으로 아늑하게 둘러쌓인 송당본향당



 신목 주변에 놓인 물색천과 제물들은 일종의 ‘카운슬링’ 비용을 내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사정에 맞게 양초 한 개, 술 한 병, 과일을 올리기도 하고 돈을 올려도 된다고 합니다. 가장 넉넉한 사람이 할망이 해 입을 물색천을 걸어둡니다. 우아하게 굴곡진 팽나무 기둥과 나뭇가지 가지마다 색동의 물색천이 묶여서 바람에 나부낍니다.

물색천과 나란히 걸린 흰 소지는 당에서 소원을 빌 때 사용하는데, 그 소지를 가슴에 안고 기도를 하면 모든 사연이 소지에 찍혀 할망이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글을 배우지 못한 옛 아녀자들과, 할머니들을 위해 생겨난 사려 깊은 의식입니다.


와흘 본향당 팽나무에 걸린 소지천송당 본향당 신목에 걸린 물색천












첫 날 방문한 와흘 본향당은 꽤나 규모가 컸습니다. 

거뭇거뭇한 제주의 돌담으로 둘러쌓인 당 안은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는지 잡초가 무성하고 제단에 올려진 제물들도 오래된 듯 보였습니다.


와흘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힘든 일, 기쁜 일, 걱정거리 들이 있을 때면 이곳으로 찾아와 조곤조곤 마음 속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풀어냈을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자분하게 들어주는 할망의 품도 그려집니다. 수백 년 된 팽나무와 바람에 날리는 색색의 천들이 괴기스러움을 주지는 않을까 하고 약간 긴장되어 있던 마음은 신당 안에 들어서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당을 둘러싼 돌담은 아늑하기 까지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연과 아픔과 눈물이 이곳에 스며들어 있을지, 얼마나 많은 비움과 내려놓음의 시간이 이곳에서 흘렀을지 생각해 봅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훌훌 털어내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삶의 터로 다시 돌아가는 그 옛날 아낙들의 모습을 팽나무 사이를 돌아 불어오는 바람이 전해줍니다.


와흘 본향당과 송당 본향당이 중산간 마을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종달리 갯것할망당은 제주의 동북쪽 해안, 구좌읍에 있습니다.

이 곳 신당으로 주로 발걸음을 한 이들은 마을의 ‘해녀’와 ‘어부’입니다. 풍어와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것이지요.

바다에 위치한 해신당으로 가는 길 답게 갯것할망당으로 향하는 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해안가 넘어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여럿 뵐 수 있었습니다.


갯것 본향당의 또다른 이름은 생개납 돈짓당 입니다. '생개납'은 이곳 신목인 우묵사스레피의 제줏말 입니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해신당



중산간 마을의 신당이 삶의 고달픈 고민거리들을 털어내어 눈물짓게 만드는 곳이었다면, 이 곳 해신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깊은 숨비소리 내뱉는 해녀들의 기도와 기원이 깃든 곳이어서인지 그 애잔함이 더합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서 있는 신목이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곳을 지키는 신목은 산간마을에서 보던 팽나무가 아니라 ‘우묵사스레피’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나무입니다. 해송 같기도 한 이 나무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기암괴석 사이에서 자라 이리저리 굽어 자세를 잔뜩 낮추었습니다.


역시 오색천과 소지가 바람타고 나부꼈는데, 이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바다의 짠 내음과 섞어 맡아지는 막걸리 냄새. 아니나 다를까 신목 아래 자리 잡은 자그마한 제단에는 빈 막걸리 병과 ‘한라산’소주 병이 가지런하게 혹은 나뒹굴고 있더군요.

달큰하고 시큼하게 맡아지는 막걸리 냄새는 이 신당이 설화 속의, 역사속의 장소가 아니라 아직도 제주 민들의 마음 깊이에 현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신당과 설문대할망은 제주민의 삶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민의 삶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제주 신당의 모습은 육지의 그것처럼 을씨년스럽거나, 어두컴컴하거나, 누추하고 가난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곳은 오히려 따스하고, 포근하고 안락했습니다.


고요한 마을의 가운데 넉넉한 담으로 둘러쌓인 와흘본향당과 송당본향당에서는 저도 슬몃 마음속에 있던 넋두리를 털어놓으며 징징. 할머니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 된 심정으로 기도를 드려보았습니다. 구지 문장을 완성시켜서 이러저러 했다고 논리정연하게 말을 꺼내놓지 않아도, 이미 마음속에 있는 것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모두 전해져서 돌아 나오는 길 안도감에 깊은 숨이 내쉬어졌습니다. 가방에 있던 붉은 손수건이라도 메어놓고 올 것을 말입니다.


송당 본향당


June은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았을까요. 


June wrote:-


중산간 도로 어디쯤 

만장굴 가는 길 


 

제주 중산간 도로를 다니다보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중산간 도로는 한라산 중턱즈음에 자리한 산간도로 정도 되겠다. 중산간 도로 어딜 가나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느낌. 휴가철이 아니여서인지 차도 없고 조용한 게 제주도 전세 내고 다니는 느낌 ^^


세미마을 가는 길도 이러했다.


세미마을은 조용하고 정겨운 시골마을이다. 다들 들일에 바쁘신지 집은 비어 있고 우체부만 마을 이 곳 저 곳을 조용히 다니고 낯선 이 지나가면 개 짖는 소리에 따사로운 햇살 부서지는... 얼마간이라도 하릴없이 머물다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더 깊게 만들어 준 곳이 마을 초입에 눈에 띄지도 않게 자리한 세미 마을 본향당이다. 표지판 안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긴가민가하며 숲 속을 찾아 들어갔는데 왠걸, 바람의 느낌이 전혀 다른 옴폭한 평지가 나타나는데 오래된 당나무 한 그루 앞에 시멘트 제단이 차려져 있는 소박한 모습이긴 했으나 예사롭지 않은 장소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여기가 본향당인줄은 모르고 "마을 사람들 제 지내기에 좋은 장소인 거 같다, 더운 여름 날 앉아 책 읽으면 딱이겠는 걸?" 하며 혼자 소리 내보았다. 청량한 바람이 너무 좋아 한참을 즐겼다.


차에 돌아와서 답사기를 보니 딱 그 곳이었네. 하하하. 여행은 즐거워~


차로 이삼분 거리인 다섯 석인상이 있는 <화천사>에 잠시 들렀다. 석인상 얘기는 Jane의 포스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자료정리 1_사진

20140627

 

대충 정리해 두었던 제주 여행 다녀온 사진을 블로그에 올릴 요량으로 다시 꼼꼼히 정리하다가 문득 인도에서 사진 정리하느라 오랜 시간 애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오늘은 사진 정리 잘 하는 법.

 

 

초등학생들 새 교복 입고 활짝 웃는 사진 좀 보내주세요.”

작년 행사 사진 좀 보여줘요. 감이 안 잡혀요.”

 

기록은 중요하다

모든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정리와 활용은 그 다음 문제이다. 애초부터 필요한 장면이나 내용을 염두에 두고 딱 필요한 사진만 찍을 수 있다면야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활동가들은 일단 찍고 보는 수밖에 없다. 디지털 카메라이다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엄청 찍어댄다. 하지만 오늘의 초점은 잘 찍는 게 아니라 잘 정리하기.

 

정리되지 않은 자료는 쓰레기이다

인도 JTS에서 20년 동안 모아 둔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을 정리해 본 경험이 있다. 각자 정리하는 편한 방법이 있겠지만 오랜 기간 많은 양의 사진을 나중에 찾아 쓰기 쉽게 정리하기에는 다음 방법이 좋았다. 정리의 핵심은 미련과 함께 과감히 버리기.

 


1. 사진 찍은 사람이 가능한 당일에, 전체 사진 중 용도에 가장 잘 맞으며 보관 가치가 있는 사진과 마음에 드는 사진 합해서 10장 이내의 사진을 골라낸다. 어떤 것들이 그런 사진인가? 예를 들어, 마을 핸드펌프 관정하는 사진인 경우,

1) 반드시 남길 사진 : 관정이 한창 진행 중인 모습 (장비가 다 나오고 구경하는 마을 주민들이 배경이 되면 더 좋고 흙이나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역동적인 모습), 관정 마지막에 물이 콸콸 쏟아 나며 주민들이 손으로 물을 뜨거나 기뻐하는 모습

2) 실무 자료 사진 : 차량 번호, 장비 모델이나 용량이 적힌 안내판, 물품 등

3) 마음에 드는 사진 : 사람들과 풍경

4) 다음 행사에 참고하거나 교육용으로 사용할 사진들은 중복되더라도 따로 폴더를 만들어 보관한다

5) 마음에 드는 사진은 개인적으로 따로 보관하고 업무 관련 사진들만 다음처럼 폴더를 만들어 담당 실무자가 보관한다.

 

2. 폴더 만들기

1) 주제와 내용별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같은 내용인 경우 날짜순으로 보관하는 것이 활용도가 높다.

2) 폴더 예

01_학교

02_마을개발

01_식수

01_핸드펌프

01_관정

20140625_마을이름

3) 파일 이름 앞에는 네 자리 연도와 날짜를 붙여 쓰는 게 자료가 많이 쌓였을 때 찾기 편하다.

4) 폴더가 많아지더라도 카테고리를 세분화하는 것이 나중에 찾기 쉽다. 예를 들면 학교 폴더 아래 수업, 특별수업, 수련, 물품지원, 행사, 학생들, 교사들, 체육활동, 건강검진, 청소, 사고 등등.

 

3. 3장 내외의 반드시 남길 사진만 같은 형식으로 폴더를 만들어 따로 또는 사진 취합을 담당하는 활동가가 별도 보관 관리한다. 실제 이후 보고서나 자료로 활용되는 사진은 이 사진들 뿐이다. 이 작업이 핵심이다. 본부에도 이 사진만 보관하는 것이 좋다.


4. 업무 부담이 되긴 하지만 현지 활동 경력이 오래 된 담당자 한 명이 주기적으로 처음 사진부터 모두 받아 일괄적으로 정리를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일관성있게 정리되는 장점이 있다. 이러면 찾기 쉽다. 사진 정리를 단순업무라 보고 신입 활동가에게 맡겼다가는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설명을 해도 무슨 사진이 필요하고 중요한지 정말이지 알지 못한다. 그저 보기에 좋고 이쁜 사진만 골라내고 정작 필요한 사진은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것이니 신입 활동가에게 맡길 생각이라면 반드시 전체 백업해 두시길.        

 

읽어보면 별 내용 아닌 것 같지만 현장에서는 이게 잘 안 되어 나중에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jane wrote:

 

 

만히 생각이 들었다.

는 엄마가 되고 싶고 아이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고.

떨어져 가는 헤진 옷을 너덜하게 입은 부처님의 나라, 인도의 어느 마을인가에 사는 동네 아이들의 어미가 되면 좋겠다고. 아침이 되면 그 아이들은 우리집 마당으로 놀러올테다.

일락 같은 보랏빛 향긋한 꽃들이 마당 한 켠에 피어 있어서 아이들은 그 꽃을 보고 반가워하고 고사리 손으로 잡초도 뽑아주고 핸드펌프에서 물을 길어다 촉촉하게 물도 줄테다.

당 한 켠에는 또, 강아지를 키우는데 그 꼬망이는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해서 우리집으로 놀러온 마을의 아이들과 비슷하게 속도를 맞추며 걸음을 첨벙첨벙 옮길테다.

닥에 돗자리 같은 것을 깔고는 아이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낮잠도 자고 밥 때가 되면 둘러앉아 함께 점심도 먹자. 그곳은 혼기가 가득 찬 노처녀 여자아이도, 굶주린 자식을 둔 마을 엄마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도 하나 둘 모여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곳이어도 좋겠다. 같이 둘러앉아 손바느질로 아이들 옷을 짓고, 시장에 내다 팔 작은 소품들을 만들어보자.

랑하는 당신과 이렇게 살면 좋겠다. 여행객도 적당히 다녀가고, 마을 사람들도 적당히 사는 그런 곳에 소박하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크지 않은 집을 가꾸면서 살면 좋겠다. 옷감을 사다가 우리 입을 옷을 손수 지어 입고, 마을에서 농사지은 채소며 쌀들을 사다가 밥을 짓고, 나무를 사다가 뚝딱뚝딱 당신 서툰 솜씨로 가구를 만들어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

이들을 가득 안을 수 있는 어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쓰레기 더미를 헤쳐서 끼니를 해결하지 않도록 다만 따뜻한 한 끼라도 내어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 끼니를 굶어서 외소하고 성장이 더딘 아이들이 점심 즈음이면 우리 집 앞마당으로 모여와 함께 밥을 지어먹고 낮잠도 자고 강아지랑 놀기도 했으면 좋겠다.

가운 겨울에는 마당에 모닥불을 지펴서 호호 언 손을 녹이고, 그 불에 주전자 올려 짜이도 끓여 나눠 마셔도 좋겠다.

메라를 가진 여행자 그대가 찾아와 사진을 찍어가도 좋겠다. 비싼 차, 대궐 같은 집이 없어도 여유를 가득 안고 살아가는 우리 두 사람과 우리의 마음보다 더 여유로운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가득 담아가시라.

국에서의 삶은 낯설고 척박할지도 모르지만, 그 곳 또한 사람이 사는 마을이니. 더군다나 그 마을에 굶어죽고 헐벗은 아이가 있으니 우리는 그 곳에 삶의 터를 잡으면 어떠하겠는가.

리하게 메마른 입술을 가진 아이가 있으니 우리는 그 곳에서 마을을 살리고 마당을 가꾸면 어떠하겠는가.

늘보다 푸르른 그 아이들의 미래를 여행자 그대, 담아가시라.


글장난^^

어제 영화보고 June과 손 맞잡고 걸어오는 길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멤돌더라구요. 

오 년, 십 년 즈음 뒤에 우리 정말 그렇게 되어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들과 더불어서

어린 시절 부터 품어왔던 생각까지 합세해서.


[글쓰기 좋은 질문642] 라는 책을 새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글 쓰기 좋은 질문!! '각 문장이 가나다-로 시작하는 글을 써보라'

이거 왠지 재미있어서 이런저런 글들을 가나다-로 시작해서 써보는 중.

내맘대로 사진 올림!!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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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wrote:


세미마을 본향당과 회천 세미마을 석인상


그곳의 바람은 우아하게 불었습니다. 

제주의 중산간 마을로 접어드는 조천읍 와흘리 어디즈음 자리한 세미마을 본향당 팽나무 아래에 앉아 쐬는 바람은, 우아하고 신비로웠습니다.


사실 세미마을 본향당을 찾는 일은 쉽지가 않아서 헤매었는데, 그 곳이 초행길이었던 우리의 탓도 있지만, 세미마을 본향당은 아마 누구라도 쉽게 찾기 어려웠을 텝니다. 이렇다 할 표지판도 하나 없었고 세미마을 본향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차는 커녕 사람도 다니기 어려울 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그리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어수룩하게 덥힌 잡초와 대나무 숲 사이에 있었으니까요.

표지판을 찾을 수도 없고, 점과 선으로만 간단히 안내해준 무책임한(^^;;) 답사책을 보면서 우리는 약간 당황. 이 곳 지리라면 바싹하실 우체부 아저씨께도 여쭤보았지만 세미마을 본향당은 잘 모르십니다.


June은 길을 찾는 감각이 뛰어나 보였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잘 살핍니다. 표지판을 잘 보기도 하지만, 주변 분위기나 느낌 같은 것으로도 우리가 가려는 장소를 잘 찾아냅니다. 그런 June이 있어 든든. 여행내내 불안함이나 걱정 없이 그를 따랐습니다.


세미마을 본향당을 가는 길도 도로를 따라 가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여긴가?’ 하고는 June이 먼저 앞서길래 따라 들어갔는데, 돌아보고 나와서 답사책을 보니, 그곳이 세미마을 본당이었더군요. 이 곳이 그 곳인지 몰라 사진도 한장 찍지 않았다는^^


답사책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당은 해묵은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대나무밭에 의지한 제단이 있을 뿐이다. 찾아가자면 당 안내문이 있는 입구에서 과수원 쪽으로 100미터 정도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라고. 답사책에서 말하는 (덤불에 가려진) 당 안내문을 우리도 보았던 것 같은데, 제줏말로 써 놓았던지 우리는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노지 귤 밭 사이를 가로질러 덤불을 헤치고 들어서니 대숲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팽나무 고목이 있고 앞 마당 만한 작은 공간이 있고, 고목 아래로 시멘트로 만든 평평한 단상 같은 것이 전부입니다.

감귤 밭에서 일하는 분들이 잠시 쉬시는 곳일까. 하고 우리는 생각했고 불어오는 바람이 바깥의 그것과 다르다고 그는 연신 말했습니다. 

흐음~ 제주 공항에 처음 내려 깊이 숨을 들이쉬며 ‘역시 제주의 공기가 다르네~’ 하며 우리는 말했었지만, 웬걸, 이곳 세미마을 본향당은 진정한 제주의 바람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도로와 불과 1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인데 이 곳 제단에 앉아 맞는 바람은 온도도, 습기도, 냄새도, 소리도 다릅니다.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 제주의 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하다고는 하나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덕에 약간 후덥지근했던 그 바람은 싹 가시고 대숲으로 둘러싸인 신당 안에서 맞는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차갑고 가벼워 바람은 신당 터를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나갑니다. 우아하고 신비롭습니다.

이 곳 신당에서 옛 제주민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을까요.


그는 연신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제주의 바람을 가슴 가득 담았습니다.


다시 과수원길을 돌아 나와 신당 맞은편에 있는 회천 오석상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세미마을 본향당과 회천 세미마을 석인상, 그러니까 다섯 개의 석상이 있는 회천 오석상은 마주해 있습니다. 

‘화천사’라는 절 뒷마당에 자리하고 있어서 불상으로 생각하고 찾아가기 쉽지만 절이 자리하기 전 아주 옛날부터 이 다섯 개의 석상은 자리했다고 합니다. 

그냥 딱 보기에도 근엄하신 부처님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짓궂은 표정, 뚱~한 표정, 마주하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어리숙한 표정을 지은 다섯 개의 석상이 있습니다.

반듯하고 매끈하게 깍아 내린 돌이 아니라 제주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무암 돌을 그냥 그대로 가져다가 세워놓았는데 그 모습 가운데 얼핏얼핏 제주민들의 얼굴이, 포즈가 서려있습니다.
































 

대체로 우리가 찾은 곳들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은 차분하게 그 곳을 둘러볼 수 있었고 여유롭게 바람을 맞거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하는 곳 마다 잊지 않고 삼배를 올립니다.

제주의 문화와, 한라산과, 그들을 지켜온 자연과 신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입니다. 

그리고 또 이러한 소중한 흔적들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인도 10년 돌아보기]를 시작하며

20140626

 

인도에 도착한 날이 2004815일이었고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게 2014228일이었으니 햇수로 10년이다. 지난 10년 동안 인도 비하르 주 가야 인근 둥게스와리라는 불가촉 천민 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살...

 

JTS(Join Together Society)라는 국제구호개발 NGO에서 교육, 의료, 마을개발 사업들을 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1994년 인도 JTS 전경  

                         2010년 인도 JTS 전경

                                                             

그 인도 10년을 돌아보며 경험과 교훈 그리고 장차 해외 국제협력 현장에 파견될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매뉴얼 성격을 띨 수 있는 훌륭한 글을 남길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귀찮다.

 

주변의 압박도 있다. “현장 활동 10년 이거 아무나 못하는 거다, 10년 경험 너무 아깝다 잊혀 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성과와 과제 모두 잘 알려야 한다, 니가 아니면 이런 일 누가 하겠느냐?” 맞는 말이긴 한 것 같은데, 'why me?'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퍼뜩 알아차려지는 게 있다.

잘 보이고 싶어 하는구나, 중간에 쓰다 말 걸 대비해 도망갈 구멍 하나 만들려는 심보군.’

 

그래서 그냥 써보는데, ‘나를 위해서 한 번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 보일 요량이 아니니 마음 가는대로 가볍고 편하게. 그러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고불산하 닭장 아파트에서

JJ

[June] 산천단

여행/제주 2014. 6. 25. 11:33

June wrote:-


흠~ 휴~


제주 산천단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 숨 돌린다. 등줄기엔 땀이 삐직삐직...

"등에 땀 났어요."

제인이 한 말씀하시는데 머쓱하다. 말은 안 해도 긴장한 게 느껴졌으리라.


운전 안 한지가 너무 오래 되었고 인도에서 10년 지내다 온 게 한국에서 남의 차 빌려 오랜만에 운전하는 것에 대해 걱정과 부담으로 작용했다. 인도는 한국과 달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주행방향도 반대이다. 어느덧 익숙해져버려서... 더구나 마지막 해에는 작은 스쿠터 사고까지 난 뒤였으니 뭐랄까, 트라우마 비스무리한 게 생기긴 생긴 모양이다. 한마디로 쫄았지, 뭐. 제주 여행 첫 장소인 산천단에 도착해서 즐거움과 설렘보다는 안도감이 우선이다. 



산천단


고래로부터 고을 수령들께서 한라산을 향해 천신과 산신들께 제사 올리는 곳이다. 해서 제주 왔다고 그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이번 제주 여행의 무사안녕을 빌고자 첫 장소로 선택했다. 발원문을 근사하게 한 자락 해볼 요량이었으나 운전하느라 긴장했던 탓인지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고, 옆에 제인 있어 좀 쑥스럽고, 근사한 말들은 생각도 안 나고... 어물어물...   


곰솔 여덟그루가 멋드러지다. 여덟그루인지 꼭 세어본다. 


여행 내내 내가 사진을 다 찍다시피했는데 여기만큼은 긴장한 탓에 내가 찍은 사진이 없는데 다행이 제인이 몇 장 찍었나보다. 하지만 사진 없이 넘어가기 섭섭하니 제주 바다 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하련다.



어딘가 하면... 제주 북동해안에 있는 어... 월정리! 해수욕장. 너븐숭이 가는 길이었던가?


덧붙이면,

제주 여행/답사에 자동차(렌트카)는 거의 필수이다. 여기저기 제대로 돌아보고자 한다면. 다른 이동수단들도 나름 맛은 있겠지만... 나는 그러니까 15년도 더 전인 어느 해 여름, 이틀 만에 자전거로 제주 일주한 적 있는데 그건 완전 극기훈련, 철인 3종 경기 수준이었음. 렌트카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싸서 놀랐다. 하루에 12,500원 (시기마다, 보험추가에 따라, 업체별로 천차만별) 차도 좋고. 가장 저렴한 경차 예약했는데 같은 가격에 한 단계 높은 2014년 신형 경차 나와서 기분 좋았다는...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한라산 올라갈 때 완전 죽을라고 함. 밟아도 밟아도 대답없는...


jane wrote:


지난 유월 열 하룻날 부터해서 다섯 밤을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가끔 흐릿한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답사와 여행의 중간 즈음 어딘가에 우리는 마음을 두고, 걷고 또 달리며 한라의 품 안에 있었습니다.


6월 11일, 첫째날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산천단-세미마을본향당-회천오석상-와흘본향당-연북정-조천연대-너븐숭이

이름만으로도 낯선 곳들. 세미마을 이라던지, 너븐숭이 같은 곳의 지명은 이름의 한 글자 사이사이에 제주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제주’ 라고 검색창에 써 넣으면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은 연관검색어들.


우리 두 사람의 제주 여행에 한 분의 안내자가 계셨는데, 바로 유홍준 교수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라는 책을 통해서 여섯 날 동안 우리에게 제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시듯 자세히 알려주셔서 어떤 때에는 네비게이션이나 가이드북 보다도 더 자세하게 답사 장소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제주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산천단.

이곳은 한라산의 산신께 제사를 드리던 곳입니다.

제주인들은 탐라국 시절부터해서 해마다 한라산 백록담 높은 곳까지 올라 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겨울에는 추위 속에서 제사 지낼 짐들을 들고 오르내리며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조선 성종에 부임한 제주목사 이약동 선생이 산신제 지내는 장소를 백록담에서 산 아래 마을 이곳 산천단으로 옮겼다 합니다.


산천단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르른 곰솔나무입니다.


600년 이라는 오랜 세월 여덟 그루의 곰솔이 이 곳 산천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육지의 소나무들과 조금 다르게 나무 껍질 색깔이 어둡고, 잔가지 없이 꼿꼿하게 하늘로 높이 솟아 있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 있는 곰솔나무들 사이사이로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기도 합니다. 바람이 시원하고, 도로가 가까워 찻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곰솔나무 사이사이를 비켜지나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허리 숙여 세 번 절을 올려 우리 두 사람은 제주입성을 고했습니다.

나란한 그와 나의 거리가 딱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산천단. 그 옛날 제주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제단 앞에 서서 제주의 무수한 신들께 인사했습니다.

다부지게 자리를 지키고 선 산천단의 여덟 그루 곰솔나무들은 마치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 마냥 느껴집니다.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라고 나도 모르게 나지막한 한 마디가 튀어나옵니다. 키 크으신 곰솔나무가 "오냐. 자알 왔다~" 하고 허헛 웃음을 내 보이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프지 않고, 사고 나지 않고(여행 내내 그가 운전을 해서 다녔기 때문에)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치기를 은근하게 부탁드려 봅니다.


마음 한 켠에 기쁨과 편안함이 동시에 샘솟으면서 제주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제주에 오느라 바쁘고 서둘렀던 마음이 한 숨 돌려지며 차분해지고 한가로워졌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제주에 온 것입니다.

June wrote:-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2014)

August: Osage County 
7.9
감독
존 웰스
출연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베네딕트 컴버배치, 이완 맥그리거, 크리스 쿠퍼
정보
드라마 | 미국 | 121 분 | 201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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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억지스러움과 억척스런 악다구니에 내내 불편하고 별로였는데 

엔딩에 나온 음악이 참 멋드러지더이다. 계속 흥얼거리게 되고...


Dreamin on the last mile home
Things are always better when we're all together
I'm dreamin' on the last mile HOME.


해질녘이나 야간에 운전할 일 있으면 그 때 듣고 싶으오.



Last Mile Home

아티스트
Kings Of Leon
앨범명
Mechanical Bull (Deluxe Ver.)
발매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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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Mile Home by Kings of Leon


PeeAss.
<August:Osage County> 오세이지 카운티의 팔월이 참 더운가봐요... 호수로 향하던 경찰차에 Osage County라 적혀 있더군요. 인디언 수족의 일족인 <오세이지> 사람들이 오클라호마 어디쯤에 모여 사나 봐요...



유토피아 꿈꾸는 마을 마리날레다

한겨레21  | 작성자 엄지원

게시됨: 2014년 04월 12일 11시 31분 KST 업데이트됨: 2014년 04월 12일 11시 31분 


스페인 안달루시아 2700명 소도시

직접 민주주의·협동조합·공동경작…

무상의료, 무상주거… 빚질 일이 없어

경찰은 없고, 혁명가와 시인을 사랑하는 마을


‘우모소’ 농장에서 일한 지도 22년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줄곧 농부로 살았다. 사람들은 안토니오(52)에게 삶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스페인에서도 개발이 안 된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마을 마리날레다에서 꼬박 반백년을 살았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틀린 말이다. 안토니오는 스스로 선택하고, 몸을 던져 지켜냈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언젠가 우모소 농장은 안달루시아 대지주의 땅이었다. 안토니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그 땅에 고개를 조아렸다. 안토니오와 친구들의 삶은 달랐다. 2013년 12월14일 현재, 1200ha(12km²)에 이르는 땅은 마리날레다 주민 대부분의 경제를 받쳐주는 지반이다.


정오가 가까워오자 초겨울에도 안달루시아의 햇살은 눈부셨다. 상추 모종에 비료를 주던 안토니오가 굽혔던 허리를 폈다. 멀리 우모소 농장의 입구가 보인다. 한때 장원의 재산을 지켜주었을 하얀 담장에는 하나의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Este cortijo es para los jornaleros en paro de Marinaleda”(이 농장은 마리날레다의 소작농을 위한 것이다). 안토니오에게 우모소 농장은 그가 선택해 일군 유토피아다.


1991년 마리날레다의 소작농들은 오랜 투쟁 끝에 대지주의 땅을 자신들의 것으로 인정받았다. 이 ‘무혈혁명’은 인구 2800명, 면적 25km²의 작은 마을 마리날레다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공동체로 만들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서구 언론은 이 마을을 ‘사회주의 유토피아’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숱한 몽상가들이 이 마을로 모여드는 이유다.


안달루시아 구릉지대의 황금빛 올리브나무 물결 속에서 마리날레다 마을은 그처럼 떠들썩한 관심이야 상관없다는 듯 한적했다. 주도인 세비야에서 동쪽으로 108km 떨어진 이 마을은 일부러 찾는 이가 아니라면, 좀체 다다르기 어려운 곳이다. 마을 중심부인 시청에 이르면 그제야 마리날레다의 ‘본색’이 드러난다.


쿠바나 베네수엘라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그라피티와 벽화가 번연히 시청 앞 거리에 그려져 있었다. “TV를 끄고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자본에 저항하는 사회적 전쟁” “단결된 마을은 누구도 억압할 수 없다” 같은 구호들이다. 고개를 돌려 시청을 바라보니 그 외벽에도 구호가 프린팅돼 있다. “마리날레다, 평화를 향한 유토피아.” 시청 건물에 새겨진 ‘유토피아’라니,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이 아닌가.



마리날레다 로고 옆에 그려진 체 게바라의 얼굴


공공연히 왕정을 부정하는 마리날레다 시내에는 스페인 왕국의 깃발이 없다. 경찰도 없다. “경찰이 없으니 한 해 예산 가운데 3억7천만원가량이 절감된다”는 설명이다. 대신 그들은 혁명가와 시인을 지지한다. 독재자 프랑코를 기리던 광장은 칠레의 첫 좌파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이름으로 갈아입었다. 공공체육관 외벽에는 거대한 체 게바라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거리에는 스페인의 국민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이름 붙였다. 스스로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자긍심은 마리날레다 어디에서나 쉬 읽혔다.


마리날레다는 원하는 것을 얻어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마을에서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우모소 농장에선 올리브를 비롯해 아티초크, 콩, 고추 등을 재배한다. 농장에 붙어 있는 제1공장에서는 올리브오일을, 마을 외곽의 제2공장에서는 통조림을 만든다. 생산품의 70%는 다른 식료품 업체에 판매하고, 30%는 ‘우마르’라는 자체 브랜드로 판매한다.


마리날레다의 주요 결정은 모두 주민회의를 통한다. 월평균 세 차례 열리는 이 회의에서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은 직접 의제를 설명한다. 늘 300~400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주민들은 시장마저 탄핵할 수 있다.


농장과 공장을 꾸려가는 것은 ‘우마르’ 협동조합이다. 마리날레다가 ‘사회주의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것은 이 협동조합 때문이다. 마리날레다의 모든 노동자는 노동자연합(SOC)이라 불리는 노조에 가입돼 있다. 이들은 업무에 관계없이 동일 임금을 받는다. 하루 47유로(약 7만원)씩 월평균 1200유로(약 180만원)다. 넉넉하진 않다. 스페인의 최저임금이 월 700유로를 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부족한 돈도 아니다.


노조에 가입된 이들은 우마르 협동조합을 통해 일거리를 찾는다. 이를 통해 마리날레다는 사실상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안달루시아 지역의 실업률이 36%에 이르는 것과 대조된다. 스페인 전체 실업률이 26% 수준이다. 이곳에서는 일자리를 원하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통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일자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100명이 전일 근무할 노동량에 200명이 지원할 경우 반일 근무로 조정해 모두에게 배분하는 식이다. “많은 돈을 버는 게 우리의 목적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노동의 공간을 만들어줘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지요.” 시에서 노동 자문을 하고 있는 돌로레스(52)가 설명했다.


세네갈에서 온 후세인(28)도 우모소 농장의 노동자다. 그는 사회주의에도, 자본주의에도 관심이 없다. 일자리가 있는 곳이면 족하다. 7년 전 세비야에 온 뒤 그는 노점에서 옷을 팔며 돈을 벌었다. 금융위기가 닥친 뒤 돈벌이가 뚝 끊겼다. 무일푼으로 거리를 전전하는 그에게 스페인 친구가 권했다. “내 고향에 가보는 게 어때? 거긴 늘 일자리가 있거든.” 4년 전 후세인이 연고도 없는 전원마을 마리날레다로 흘러들어온 이유다.


초겨울의 공원에서 노숙하던 ‘불법체류자’ 신분의 후세인에게 마리날레다시는 취업비자 발급을 도와주고 축구경기장의 선수대기실 열쇠를 건넸다. “마리날레다는 이민자들을 보호해주고 또 다른 동력을 주는 장소인 게 분명해요. 비자만 해도, 세비야에 있었다면 절대 해결되지 않았을 거예요.” 100%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다. “농사일도 고되고 미래는 안 보여요.”



대문 왼쪽에 유토피아의 땅이라고 쓰여 있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스페인 내 우파들이 이 작은 마을을 비판할 때 집어드는 논거다. 공산주의적 생활방식 때문에 수십 년째 쳇바퀴만 굴리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마리날레다엔 ‘혁신’의 분위기는 없었다. 투쟁 세대의 자녀들은 세비야로 나가 고등학교나 대학에 다닌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도시 생활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날레다의 목표는 경쟁이나 개발이 아니에요. 연대와 통합이죠.” 노동 자문인 돌로레스가 말했다. 자본주의적 ‘성장’ 담론을 거부하면서도 그에 익숙해진 나에게, 마리날레다는 ‘다른 일상’뿐 아니라 ‘다른 가치’까지 보라고 자꾸 묻고 있었다.


게다가 마리날레다의 인구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후세인을 포함해 20여 명의 이주민 이웃도 생겼다. 그 속도는 느리지만 1950~70년대 빈곤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고향을 등졌던 것을 고려하면 변화임이 분명하다. 적은 임금, 고된 노동에도 마리날레다 주민들의 얼굴이 밝은 이유가 있다. 마리날레다엔 잔디구장·스포츠센터·노인복지관·문화센터를 포함해, 월 이용료가 2만원도 되지 않는 아동보육시설·수영장·공원 등 도시가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편의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마리날레다 주민들은 빚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을 통틀어 인생을 저당 잡힐 만큼 큰돈을 빌릴 일이 없다. 스페인 정부가 무상의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의료비로 재산을 탕진할 일이 없는데다, 빚내어 집을 살 일도 없는 까닭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간교한 덫은 ‘빚’이다. 대출을 뜻하는 모기지(Mortgage)가 그 안에 이미 죽음(Mort)을 내장하고 있듯, 빚은 경제적 죽음인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본주의는 그같은 죽음을 비용 없는 상품처럼 손쉽게 권한다. 그 덫을 피할 수 있다면, 자신들의 마을을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마리날레다에서는 월 15유로(약 2만1천원)의 비용만으로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다. 자녀에게 상속도 가능하다. 사실상 무상주거나 마찬가지다. 경제위기 이후 안달루시아 지역에서만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69만 가구가 강제 퇴거당한 사실을 돌이켜본다면 놀라운 프로그램이다.



마리날레다 주민들이 사는 공동 주택


2년 이상 마리날레다에 거주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주택조합을 만들고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마리날레다의 주요 결정은 모두 주민회의를 통한다. ‘직접민주주의’ 원칙이다. 특히 노동에 참여하거나 주거 지원을 받으려면 주민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월평균 세 차례 열리는 이 회의에서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은 직접 의제를 설명한다. 누구나 참석하고 발언할 수 있지만 16살 이상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늘 300~400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주민들은 시장마저 탄핵할 수 있다.


건축 허가가 떨어지면 시는 땅을 제공하고 건축가의 임금을 내준다. 자재비는 안달루시아 정부가 지원한다. 이렇게 지은 주택이 지금까지 350채가 넘고, 마을 한쪽에선 늘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호세 안토니오(41)도 8년 전 조합을 구성해 집을 지었다. 주택당 가용면적은 190㎡ 수준이다. ‘무상(에 가까운)주거’에 대해 갖는 편견을, 마리날레다는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사장이라곤 해도, 동생과 둘이 집을 개축하는 일을 하니, 호세는 스스로 고용주이자 노동자다. 방 3개와 응접실 2개가 달린 호세의 2층짜리 집에선 나름의 취향이 읽혔다. 14살 딸과 7살 아들의 방을 세심하게 가꾼 손길에서, 곤궁의 흔적은 느낄 수 없었다. “조합에서는 얼개만 함께 지을 뿐이에요. 집 구조를 어떻게 디자인할지는 개인의 자유지요.” 사업 허가만 받는다면, 집을 개조해 가게를 내는 것마저 자유다. 막대한 건축비와 이자, 조합 운영비까지 분담하고도 자로 찍어낸 듯한 성냥갑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호세도 다른 이들처럼 매달 15유로를 정부에 내고 있다. 이전까지 그는 50유로를 내고 지금 집의 절반쯤 되는 크기의 집에 세들어 살았다. “주거정책이 도입되기 전엔 많은 이들이 가족끼리 한집에 모여 살았습니다. 돈이 없으니 독립을 할 수 없었죠.” 그의 삶은 한결 나아졌을까. “무초!”(무척요) 호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기본적 삶의 필요성이 해결됐습니다. 다른 곳들에 비해 좋은 길을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BMW나 아우디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기본적인 삶의 필요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어요. 매일 일하고 저녁이면 가족과 걱정 없이 식사하는 삶, 투쟁은 힘겨운 것이고 우린 견뎠어요. 그 결과를 당신이 보고 있는 거죠. 이해하겠어요?” -안토니오



마을 골목에 그려진 벽화에도 유토피아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겨본 적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1%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99%가 승리했다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을 상대로 통쾌한 반전을 이뤘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언제인가. 마리날레다에는 그런 반전과 쾌감이 있다. 자신들의 투쟁을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BMW나 아우디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기본적인 삶의 필요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어요. 매일 일하고 저녁이면 가족과 걱정 없이 식사하는 삶, 투쟁은 힘겨운 것이고 우린 견뎠어요. 그 결과를 당신이 보고 있는 거죠. 이해하겠어요?”


농부 안토니오의 한마디는 네루다의 시 한 줄 이상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자신의 세계에서 유토피아를 만난 적이 있는 사람, 그리하여 희망을 움켜쥐는 법을 아는 사람의 말이 가진 진정성 때문이었다. 마리날레다에서 유토피아는 평범한 꿈을 이루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 한번 그런 평범한 꿈을 당연하다는 듯 꿔본 적이 있을까. 그리하여 유토피아는, 아직 멀다.


더 보기: 마리날레다 협동조합 주택조합 주민회의 안달루시아 스페인 생태공동체 시장 우마르 무상의료 고르디요 완전고용 국제 우마르 협동조합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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