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하지만 가지 않은 길

재인 wrote:


2014.7.12 토



끄적끄적 적어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그 순간들은 잘 기억에 나지 않아요.


으아오. 비쌌던 1인실 병실료는 백 원 단위까지 선명히 기억나는데

소풍 온 듯 김밥이며, 과일, 빵 같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와서 병실에서 나눠먹던 당신과 엄마의 편안한 모습은 기억이 나는데

오버사이즈 큼지막한 환자복도 기억이 나는데 말이에요


소화기내시경센터 상부내시경구역 6번방 앞도 기억이 나네요


나는 말짱한데 환자복을 멀거니 입고 바퀴달린 베드에 누워가던 그 길은 당신이 올린 사진 덕분에 다시 기억이 나

떨리거나 긴장하는 대신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들이댄 카메라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치만 엄마가 애써 지은 웃음 뒤에 숨겨진 걱정스런 표정이 눈이 밟혀서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던걸요

거기 들어가면 추울지 모르니 양말을 신자하셨는데, 나는 늘 그렇듯이 괜찮다며 넘겼고, 

엄마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된 것은 “보호자는 여기서 기다리세요.”하는 간호사의 소리를 뒤로하고 위잉- 자동문이 닫히던 후였어요 

춥지는 않았지만, 춥다고 걱정할 엄마 마음이 켁 하고 걸려서는. 나쁜 딸-



낯선 곳 새로운 곳에 가면 두리번두리번 어디엔 뭐가 있나 분위기는 어떤가 눈에서 은근한 레이져를 뿜어내며 살피는 게 주특기인데,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던지, 그럴 여유가 없었던지 잘 기억나는 것이 없어요

치료실 앞 복도에 덩그러니 누워 기다렸다가, 

티비에서만 보던 수술실 같이 생긴 부분조명이 설치된 방에 들어갔다가, 

팔에 주사가 몇 대 놓아졌고. 

그러고는 심호흡 서너 번에 의식이 흐려지고 호흡을 놓쳐서는 잠에 빠져 들었던 것 같아요



눈을 떠보니 다시 병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걱정스런 표정의 엄마 얼굴을 보면서 나는 

다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덤덤한 편안함 같은 것을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덤덤한 편안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다시 숨이 쉬어지고, 그 호흡의 들락거림을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과 잠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엄마가 있다는 것과 같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스치듯 엄마 얼굴을 확인하고는 바로 눈에 들어온 건 당신인데, 

주섬주섬 내가 손을 뻗어 당신 손을 잡았던가요 당신이 내 손을 먼저 잡아주었던가요

엄마 얼굴을 보았을 때랑은 다른 뜨끈한 무언가가 울컥 가슴언저리에서 올라와서는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어요 

이제 안전하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이제 다 끝났다. 괜찮다. 하고 조곤조곤 말 해 주던 찬찬한 목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 말씀처럼(크크, 웃기다 좀) 엄청난 안도감을 주더란 말이에요



사실 조금 당황했던 것 같아요.

눈을 떠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 당신이어서 말이에요. 엄마가 알면 섭섭하겠는 걸


그 짧은 순간에 당신을 찾는 나를 보면서, 손에 힘을 꼭 주어 당신 손을 잡는 나를 보면서

‘뭐지 이사람?’ 하고 놀랐다는


'뭐지 이사람?‘ 의 생략된 의미들은

‘나한테 이 사람이 얼마나 큰 존재길래 눈 떠서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이 사람이지?’

혹은

‘내가 이렇게나 많이 좋아하나?’

혹은

‘손!!손!! 손 잡아줘요.’

였다는. 히히 쓰고 나니 좀 웃기다



어쨌든,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눈앞에 당신이 보이니 나는 깨어난 것만 같았어요.


제제표 현미밥에 맑은 감잣국과 두부조림, 양배추쌈

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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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wrote:-


Jane 

2014년 7월 7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식도이완불능증으로 풍선 확장술 시술


희한하고 희귀한 식도이완불능. 

식도 괄약근 주위 신경절 세포 손상으로 괄약근 이완 기능은 멈추고 수축 기능만 남아 음식 삼키기가 어려운 질환. 원인 불명. 이런 저런 여러 방법으로 치료해보다 결국 괄약근을 터뜨려 압력을 줄여 주는 내시경 시술 받음.


5일이 지난 지금, 아직 가슴 통증이 간헐적으로 있지만 음식은 잘 넘기고 있고 급속도로 회복 중

야호! 


뭘 좀 만들어 먹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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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wrote:-


Jane이 제주 4·3 사건 관련 유적지를 따로 묶어 올려 놓았다. 마음이 하나로 일어 읽기에는 자연스럽고 편했지만 그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 덜 아문 상처를 스치듯 쓰라림이 올라온다.



 

사진은 제주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 내 강요배 작가의 그림 <젖먹이> 위에 쓴 시



동백동산

동백 활짝 핀 잘 가꿔 진 정원 정도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이거 왠걸? 

 


철 지나 동백은 없고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땅에선 스산한 냉기와 습기 뿜어 올라와 고목들 타고 흐르는 귀기 가득한 곳. 이러니 이 곳으로 제주민들이 숨어 들어올 수 있었겠구나 싶다. 하지만 이 곳 조차 안전하지 않아 여기서도 처참히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니... 제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가슴 아픈 곳이다. 참 아는만큼 보이는구나 싶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조금 전만 해도 굳은 얼굴에 말도 없이 손 꼭 잡고 자꾸만 빨라지는 걸음에 뒤도 안 돌아보고 헤쳐 나왔던 동백동산. 다시 간다면 좀 맘 편히 갈 수 있으려나? 끄트머리에는 유명한 습지가 있다는데 거기까진 못 가봤다. 담에 꼭 담담히 거기까지 걸어가보리라. 



백조일손지묘

와, 여긴 또 뭐냐? 이 132위의 내력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 참 나.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고 가슴 아픈 역사가 아로새겨진 현장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일어난 사태이긴 하지만 1948년 4·3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부디 극락왕생하셨기를...



제주에 억울한 죽음들이 너무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이 옛날 일이기만 하고 옛 일을 거울삼아 더 이상은 이런 비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는 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11구의 시신을 품은 채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가 있다. 억울하다.